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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멈은 왜 후추 대신 ‘향신료의 여왕’이 됐을까? 그린·블랙 카다멈의 차이부터 마살라 짜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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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멈은 왜 향신료의 여왕이라 불릴까요? 케랄라 카다멈힐스의 기원과 그린·블랙 카다멈의 차이, 마살라 짜이와 아라비아 커피에 쓰이는 이유까지 살펴봅니다.

후추가 향신료의 왕이라면 카다멈은 단연 향신료의 여왕이라 불린다. 사프란, 바닐라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신료 중 하나로 꼽히는 카다멈은, 그 고귀한 별명에 걸맞게 수천 년 동안 인류의 미각과 후각을 매혹해 왔다. 껍질을 까는 순간 퍼지는 향은 다른 어떤 향신료와도 닮지 않았는데, 인도 남서부의 습한 숲 그늘에서 자라는 초록색 꼬투리는 껍질을 까는 순간 시트러스, 민트, 스파이스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폭발적인 향기를 뿜어낸다.

카다멈힐스, 신들의 숲에서 시작된 향신료

카다멈의 고향은 인도 남서부, 서고츠 산맥의 울창한 상록수림이다. 작은 카다멈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향신료 중 하나로, 인도 서고츠 산맥의 상록수림이 원산지이자 자생지로 여겨진다. 이 지역은 지금도 그 이름 그대로 불리는데, 인도 남서부 케랄라와 타밀나두에 걸친 서고츠 산맥, 특히 카다멈힐스 일대가 전통적인 자생·재배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19세기까지도 세계 카다멈 공급의 상당 부분이 서고츠 카다멈힐스의 야생 또는 반야생 개체군에서 나왔을 정도로, 사람의 손이 닿기 전부터 숲은 이미 카다멈의 터전이었다.

카다멈의 역사는 문헌으로 확인되는 향신료 중에서도 손꼽히게 길다. 카다멈은 남아시아에서 오래전부터 향신료와 전통 의학 재료로 이용되어 왔다. 고대 인도 의학 문헌에도 카다멈류 향신료가 등장하며, 이후 서아시아와 지중해 지역으로 교역되면서 귀한 향료로 알려졌다. 전통 의학에서도 일찍부터 쓰였는데, 진짜 카다멈은 기원전 4세기경부터 아유르베다 의학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에도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 사이에 쓰인 의학서 차라카 삼히타는 카다멈을 여러 처방의 구성 성분으로 언급한다.

카다멈이 유럽으로 건너간 경로에는 아라비아 상인들의 교역로가 있었다.카다멈은 고대부터 인도와 서아시아를 잇는 향신료 교역망을 통해 지중해 세계에 알려졌고, 그리스·로마 시대에도 동방에서 들어오는 향료 가운데 하나로 취급됐다. 중세에는 아랍 상인들이 인도양 향신료 무역의 중요한 중개 역할을 했다. 이후 1498년 5월 20일 바스코 다 가마가 말라바르 해안에 도착한 것을 계기로 카다멈을 비롯한 향신료가 대량으로 유럽에 수출되었다. 다만 유럽인들의 취향은 다른 향신료로 기울어, 후추와 생강이 유럽인들의 선호를 얻으며 카다멈을 밀어냈다. 본격적인 대규모 재배가 시작된 것은 뜻밖에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세기 초가 되어서야 카다멈 농장이 조성되었는데, 이때 커피와 함께 섞어 심었다. 18세기에는 트라반코르 왕국이 카다멈 거래를 독점해 모든 생산물을 알레피 주 창고에만 팔도록 했다.

케랄라 카다멈힐스의 그늘진 플랜테이션에서 줄기 아래쪽에 꼬투리가 송이송이 달려 자라는 카다멈 식물

생강과의 다년생 식물, 꼬투리 속 작은 씨앗

카다멈은 생강이나 강황과 같은 생강과에 속하는 식물로, 생김새부터 독특하다. 그린 카다멈의 식물명은 Elettaria cardamomum으로, 땅속 뿌리줄기에서 여러 개의 잎줄기가 돋아나는 다년생 초본이다. 보통 수 미터 높이까지 자라며 좋은 환경에서는 5~6m에 이르기도 한다. 잎은 길고 좁으며, 땅 가까이에서 별도의 꽃줄기가 뻗어 흰색이나 연한 녹색·보랏빛이 도는 꽃을 피운다. 꽃이 진 뒤에는 길이 1~2cm 안팎의 삼각형에 가까운 삭과가 맺히고, 그 안에 여러 개의 짙은 갈색 씨앗이 들어 있다. 이름의 유래도 흥미롭다. 속명 엘레타리아는 카다멈 씨앗을 가리키는 타밀어 구어 ‘엘레타리’에서 왔으며, 원래 의미는 ‘잎의 알갱이’다. 영어 단어 카다멈 자체는 라틴어 카르다모뭄에서 왔고, 이는 그리스어 카르다모몬을 라틴화한 것으로, 크레스를 뜻하는 카르다몬과 기원이 불분명한 아모몬의 합성어다.

그린 카다멈과 블랙 카다멈, 같은 이름 다른 향

카다멈’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식물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향신료로 가장 널리 쓰이는 그린 카다멈은 Elettaria cardamomum의 열매이고, 블랙 카다멈은 주로 Amomum subulatum 같은 다른 생강과 식물의 열매를 가리킨다. 그린 카다멈은 비교적 작고 연녹색인 반면, 블랙 카다멈은 크기가 더 크고 갈색이나 짙은 갈색을 띤다. 두 향신료는 식물학적으로도 다른 종이며 향의 성격도 크게 다르다 . 블랙 카다멈의 씨앗 꼬투리는 강한 장뇌 향을 지니며, 건조 방식에서 비롯된 훈연 향이 특징이다. 이 훈연 향 때문에 쓰임새도 갈리는데, 그린 카다멈과 달리 블랙 카다멈은 단맛이 나는 요리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블랙 카다멈의 대표 산지는 인도 북동부 시킴의 히말라야 산록이다. 현지에서는 이 향신료를 ‘바리 엘라이치’ 또는 ‘검은 황금’이라 부른다. 품질의 신뢰도를 보장하기 위해 전통 재배 지식과 고유한 특성을 인정받아 2015년 3월 지리적표시(GI) 인증을 받았다. 두 종류 모두 인도가 주요 생산지인데, 인도에서는 시킴과 케랄라가 재배 면적과 생산량 모두 가장 높은 주요 생산지다.

녹색 카다멈과 검은색 카다멈 꼬투리를 나란히 놓고 하나를 갈라 속의 검은 씨앗을 보여주는 모습

손으로 하나씩 거두는 수확, 7년을 사는 식물

카다멈은 심은 지 몇 년이 지나야 비로소 꼬투리를 맺기 시작하는 느린 작물이다. 카다멈은 숲의 그늘과 비슷한 반음지 환경에서 잘 자라며, 심은 뒤 보통 2~3년이 지나야 본격적으로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한 번 조성한 포장은 여러 해 동안 수확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어 농가에서는 오래된 포기를 갱신하거나 다시 심기도 한다. 열매 하나에는 여러 개의 향기로운 씨앗이 들어 있다. 수확철도 정해져 있어 일반적으로 9월에서 2월 사이에 수확되며 이 중 대부분은 향신료 시장에서 거래된다. 꼬투리가 완전히 벌어지기 전, 향이 가장 강할 때 사람 손으로 하나씩 따야 해 노동력이 많이 든다는 점이 카다멈을 값비싼 향신료로 만드는 또 하나의 이유다. 향의 핵심은 씨앗 속 정유 성분에 있는데, 주된 휘발성 성분은 테르피닐 아세테이트와 유칼립톨이다.

영양성분, 적은 양으로도 미네랄이 풍부한 향신료

향신료는 한 번에 많이 먹는 식재료가 아니지만, 100g 기준으로 보면 카다멈의 미네랄 함량은 상당히 두드러진다. 말린 카다멈 향신료는 100g당 311kcal, 단백질 10.8g, 지방 6.7g, 탄수화물 68.5g을 함유한다. 100g 기준으로 보면 칼슘·마그네슘·철·칼륨·망간 등 여러 무기질이 비교적 높은 수치로 나타난다. 다만 향신료는 실제 한 번에 사용하는 양이 매우 적기 때문에 100g 기준 수치를 일상적인 섭취량과 그대로 연결해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밖에도 칼슘 383mg, 마그네슘 229mg, 인 178mg, 칼륨 1119mg, 아연 7mg을 함유한다. 다만 이는 향신료 자체의 수치로, 요리 한 그릇에 실제로 들어가는 카다멈의 양은 1g 안팎에 불과하므로 미네랄 섭취원으로서의 의미는 제한적이며, 오히려 소량으로도 풍미를 결정짓는 향 성분의 공급원으로 이해하는 편이 알맞다.

마살라 짜이부터 아라비아 커피까지, 세계가 사랑한 향

카다멈이 가장 널리 쓰이는 무대는 인도의 부엌과 찻잔이다. 간 카다멈은 여러 인도 커리의 재료일 뿐 아니라 마살라 짜이의 향을 결정짓는 주된 요소다. 차와 커피 모두에 카다멈이 들어가는 것은 이란과 인도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란과 인도에서는 커피와 차에 향을 더하기 위해 카다멈을 사용한다. 아라비아반도의 커피 문화에서는 환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는데, 아라비아반도에서는 커피에 카다멈을 함께 넣어 향을 더하는 전통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지역에 따라 사프란이나 정향 같은 향신료를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만든 커피는 손님을 맞이할 때 내는 환대의 음료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흥미롭게도 카다멈은 아시아를 넘어 북유럽 베이킹에서도 핵심 향신료로 자리 잡았다. 카다멈은 요리와 베이킹 모두에 쓰이며 인도, 아라비아, 중동, 스웨덴 레시피에서 흔히 발견된다.

고르는 법과 보관, 통꼬투리가 답인 이유

카다멈을 고를 때는 색과 통통함을 함께 살펴야 한다. 그린 카다멈을 고를 때는 꼬투리가 비교적 통통하고 심하게 갈라지거나 쪼그라들지 않은 것을 살펴보는 것이 좋다. 손으로 살짝 눌렀을 때 속에 씨앗이 차 있는 느낌이 들고, 꼬투리를 열었을 때 향이 선명한 것이 좋다. 색은 품종과 건조 방식, 저장기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초록색의 진하기만으로 품질을 판단하는 것은 피하는 편이 좋다.시중에는 표백한 흰색 카다멈도 유통되는데, 이는 그린 카다멈을 표백해 흰 카다멈으로 판매한 것으로, 구운 제품의 색 변화를 막기 위한 용도다. 흰 카다멈은 일반적으로 그린 카다멈을 표백하거나 색을 옅게 처리한 제품으로, 색이 음식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가공 과정에서 향의 인상이 달라질 수 있어 그린 카다멈과 완전히 같은 풍미로 보기는 어렵다. 향이 쉽게 날아가는 향신료이니만큼 가루보다는 통꼬투리로 구입해 밀폐 용기에 서늘하고 어두운 곳에 보관하다가, 쓰기 직전 꼬투리를 살짝 눌러 깨고 안의 씨앗만 갈아 쓰는 방식이 향을 가장 오래 지키는 방법이다.

카다멈의 향은 씨앗 속 정유에 들어 있는 1,8-시네올과 α-터피닐아세테이트 같은 휘발성 성분에서 크게 나온다. 씨앗을 미리 갈아두면 표면적이 넓어져 이런 향기 성분이 공기 중으로 빠르게 날아가거나 산화되기 쉽다. 반대로 씨앗이 꼬투리 안에 들어 있는 상태에서는 바깥 껍질이 향의 손실을 늦추는 보호막 역할을 한다. 카다멈을 통꼬투리 상태로 보관하다가 사용할 때마다 씨앗을 꺼내 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카다멈이 수천 년 동안 왕의 자리를 후추에게 내주고도 여왕의 이름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작은 꼬투리 하나에 시트러스와 민트, 장뇌와 스파이스가 겹겹이 쌓인 복합적인 향 때문이다. 케랄라의 그늘진 숲에서 사람 손으로 하나씩 거둬들인 그린 카다멈과 히말라야 산록에서 장작불에 그을려 만든 블랙 카다멈은 같은 이름을 쓰지만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진 향신료다. 인도의 짜이 한 잔, 아라비아의 손님 접대용 커피, 북유럽의 명절 빵 반죽까지, 카다멈은 저마다 다른 식문화 속에서 공통적으로 ‘향을 완성하는 마지막 한 조각’으로 자리해 왔다. 그 작은 씨앗의 향을 맡아보면, 왜 이 향신료가 사프란, 바닐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오랫동안 귀한 대접을 받아왔는지 이해하게 된다.

참고자료

  • Wikipedia, “Elettaria cardamomum”
  • Wikipedia, “Black cardamom”
  • Wikipedia, “Cardamom”
  • Agriculture.Institute, “Exploring Cardamom Cultivation in India”
  • ScienceDirect, “The Agronomy and Economy of Cardamom (Elettaria cardamomum M.): The Queen of Spices”
  • Indian Mirror, “Indian spices of cardamom in history and uses”
  • Max Daumin, “Cardamom, queen of spices. Origin and use”
  • Krishi Jagran, “Sikkim’s GI-Tagged Large Cardamom”
  • Ripa Online, “Sikkim Large Cardamom”
  • Source to You, “카다멈”
  • Bake It With Love, “Cardamom Substitute”
  • foodstruct.com / vegnt.com / foodnutrients.org, Cardamom Nutrition Data (USDA 기반)
  • Royal Botanic Gardens, Kew, Plants of the World Online — Elettaria cardamomum 원산지·형태·정유·역사·교역
  • ScienceDirect, The Agronomy and Economy of Cardamom: The Queen of Spices — 카다멈힐스, 아랍 무역, 19세기 플랜테이션 역사
  • ScienceDirect, Botany, traditional uses, phytochemistry and biological activities of cardamom — 분류·재배·향기 성분
  • Spices Board India — 인도 그린 카다멈 재배·산업 자료
  • Intellectual Property India — Sikkim Large Cardamom GI 등록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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