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맥의 쌍둥이, 메이스는 씨앗이 아니라 껍질에서 나온다
메이스는 넛맥과 어떻게 다를까요? 육두구 열매 속 붉은 가종피가 향신료로 완성되는 과정과 영양, 보관법까지 살펴봅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나 에그노그에 향을 더할 때, 혹은 생선 요리에 은은한 온기를 입힐 때 쓰이는 향신료 메이스는 사실 우리가 흔히 아는 넛맥(육두구)과 한 몸에서 나온 쌍둥이 향신료다. 같은 열매, 같은 씨앗을 두고도 어느 부위를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름과 향을 갖게 된다는 점이 메이스를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다.
넛맥과 한 몸에서 나온 또 다른 향신료
넛맥은 미리스티카 프라그란스(Myristica fragrans)의 씨앗이고 메이스는 그 씨앗을 둘러싼 가종피다. 즉 열매 하나에서 넛맥과 메이스라는 두 가지 상업적 향신료가 동시에 나오는 셈인데, 식물학적으로 이런 구조는 상당히 드문 경우에 속한다. 미리스티카 프라그란스는 씨앗에서 얻는 넛맥과 씨앗의 가종피에서 얻는 메이스라는 두 가지 뚜렷한 향신료의 주된 원천으로서 경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향기로운 나무다.
겉모습과 식감은 전혀 다르지만 향의 뿌리는 같다. 메이스는 약간 따뜻한 맛과 넛맥과 비슷한 향을 지니며 구운 요리, 고기, 생선, 소스, 채소에 향을 더하는 데 쓰이고 저장이나 피클링에도 사용된다. 다만 둘을 나란히 두고 맛보면 분명한 차이가 드러난다. 메이스와 넛맥 모두 견과류 같고 따뜻한 풍미를 지니지만, 메이스는 갈았을 때 더 강한 편이라 넛맥 대신 쓸 때는 양을 줄여야 한다.
말루쿠 제도, 향신료 전쟁의 진원지
메이스의 고향은 지금의 인도네시아 동부, 흔히 ‘향신료 제도’로 불리던 말루쿠 제도다. 넛맥나무인 미리스티카 프라그란스는 인도네시아의 말루쿠, 즉 향신료 제도가 원산지다. 그중에서도 반다 제도의 극히 일부 섬이 원래 자생지였다. 원산지는 몰루카 제도에 속한 반다 제도 가운데 단 두 개의 섬이었다.
이 작은 섬들이 수백 년간 유럽 열강의 표적이 된 이유는 단순했다. 넛맥과 메이스가 당시 유럽에서 금값에 맞먹을 만큼 귀한 교역품이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영국이 차례로 이 섬들의 지배권을 두고 다퉜고, 그 치열한 경쟁의 역사는 오늘날까지도 향신료 무역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지금은 원산지의 좁은 한계를 벗어나 인도,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카리브해의 그레나다 등지에서도 재배되지만, 여전히 그레나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넛맥과 메이스를 수출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로 ‘향신료의 섬’이라 불린다.
붉은 레이스가 주황빛 블레이드가 되기까지

넛맥나무는 열대의 상록교목으로,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어 수분을 위해서는 두 그루가 함께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 넛맥나무에는 수나무와 암나무가 따로 있으며 수분과 결실을 위해서는 두 종류가 모두 필요하다. 열매는 살구만 한 크기로 자라며 익으면 스스로 갈라져 속을 드러낸다. 다 익은 열매는 나무에 달린 채로도 갈라지면서 그 속에 있는 아름다운 가종피를 드러낸다.
이때 드러나는 것이 바로 메이스의 원료다. 열매 속에는 보라빛을 띤 짙은 갈색의 광택 있는 씨앗이 있고, 그 씨앗은 붉거나 진홍색의 가종피로 덮여 있는데 씨앗은 넛맥의 원료가 되고 가종피는 메이스의 원료가 된다. 손으로 벗겨낸 이 레이스 모양의 가종피는 처음엔 선명한 선홍색을 띠지만, 건조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색이 옅어진다. 씨앗은 따로 모아 갈아 육두구 향신료를 만들고, 가종피는 다시 옅은 노란색이나 주황색이 될 때까지 10~14일 동안 더 건조시킨다. 메이스의 색상은 건조하면 옅은 노란색, 주황색 또는 황갈색으로 바뀌며 길쭉하고 두툼한 끈 모양이 된다. 완전히 마르면 잎맥처럼 갈라진 조각, 이른바 ‘블레이드(blade)’ 형태로 유통되며, 부서진 조각들도 여전히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하나의 열매에서 나오는 메이스의 양은 넛맥에 비해 훨씬 적다. FAO의 가공 안내서는 건조 넛맥과 건조 메이스의 비율을 대략 20대 3으로 제시한다. 이 때문에 메이스는 넛맥보다 귀하게 거래되는 경우가 많고, 향도 더 응축되어 있다. 메이스는 넛맥 씨앗보다 정유 함량 비율이 높아 8.1~10.3퍼센트에 달하며, 주요 구성 성분은 사비넨·피넨·펠란드렌 같은 모노테르펜 탄화수소와 리모넨·테르피넨-4-올 같은 산소화 모노테르펜, 그리고 미리스티신·사프롤 같은 방향족 에테르다.
같은 향, 다른 결 – 메이스와 넛맥 비교

둘의 향 차이는 어느 조직에서 왔느냐에 달려 있다. 가종피인 메이스는 씨앗보다 얇고 조직이 성글어 휘발성 향 성분이 더 빨리, 더 화사하게 퍼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메이스는 색이 옅은 소스나 수프, 쌀 요리처럼 음식의 색을 해치지 않으면서 향만 더하고 싶을 때 특히 선호된다. 반면 단단한 씨앗을 통째로 갈아 쓰는 넛맥은 더 뭉근하고 달콤한 뒷맛을 남긴다. 실제로 전통 요리에서도 쓰임이 갈린다. 넛맥은 애플 사이더, 멀드 와인, 커스터드와 에그노그에 더해지는 전통적인 향신료이며, 스코틀랜드에서는 메이스와 넛맥이 해기스의 흔한 재료로 쓰인다.
영양성분, 적은 양으로 진한 존재감
메이스는 향신료답게 한 번에 먹는 양이 극히 적지만, 농축된 성분 구성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면이 있다. 간 메이스 100그램을 기준으로 보면 열량은 약 475킬로칼로리이며 지방 32.4그램, 단백질 6.7그램, 탄수화물 50.5그램, 수분 8.2그램을 함유한다. 식이섬유 함량도 상당히 높은 편으로 같은 기준으로 약 20.2그램의 총 식이섬유를 함유한다.
무기질 구성도 눈에 띈다. 칼슘 252밀리그램, 철 13.9밀리그램, 마그네슘 163밀리그램, 인 110밀리그램, 칼륨 463밀리그램을 함유하며 구리와 망간 함량도 높은 편이다. 다만 이는 향신료 100그램이라는 비현실적으로 큰 양을 기준으로 한 수치이며, 실제 한 번 사용하는 양(보통 1그램 내외)으로 환산하면 섭취하는 절대량은 매우 미미하다. 메이스는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먹는 식재료라기보다, 소량으로 향과 풍미를 더하는 조미료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하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메이스에 들어있는 방향족 성분이다. 메이스는 넛맥과 같은 방향 성분을 지니는데 그중 미리스티신은 독성학 연구에서 대량 섭취 시 넛맥 중독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요리에 쓰는 통상적인 소량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다량을 한 번에 섭취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고르고 보관하는 법
메이스는 블레이드 형태와 분말 형태로 유통된다. 블레이드는 조각이 크고 색이 균일하게 주황빛이나 황갈색을 띠는 것이, 분말은 개봉 후 눅눅해지지 않고 고운 입자를 유지한 것이 신선도가 좋은 편이다. 건조 과정에서 습기가 들어가면 상품 가치가 떨어지므로 품질 관리가 중요한데, 건조 중 수분을 머금어 곰팡이가 생긴 메이스는 FAO의 가공 지침에 따라 폐기 대상이 된다. 가정에서는 빛과 습기를 피해 밀폐 용기에 담아 서늘한 곳에 두면 향이 오래 유지되며, 블레이드 상태로 보관했다가 쓸 때 바로 갈아 쓰면 더 진한 향을 즐길 수 있다.
향신료 전쟁의 유산, 지금은 식탁 위의 섬세함으로
한때 섬 하나를 통째로 거래하게 만들었던 향신료가 이제는 베이킹 트레이 위의 작은 가루로, 고기 육수 속 은은한 향으로 자리를 옮겼다. 메이스를 쓸 때마다 느끼는 섬세하고 화사한 향기 뒤에는 반다 제도의 작은 섬들을 둘러싼 수백 년의 교역사와, 하나의 열매에서 두 가지 향신료를 길어내는 자연의 정교함이 함께 담겨 있다.
넛맥을 쓸지 메이스를 쓸지는 결국 어떤 색과 어떤 결의 향을 원하는가의 문제다. 진하고 달큰한 뒷맛을 원한다면 넛맥을, 맑고 화사한 향을 음식 본연의 색 위에 얹고 싶다면 메이스를 고르면 된다. 같은 나무, 같은 열매에서 나온 두 향신료가 이렇게 다른 쓰임을 갖는다는 사실이야말로 메이스를 단순한 넛맥의 부산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독립적인 향신료로 대접해야 하는 이유다.
참고자료
- Britannica, “Mace”
- FAO, “Spices and condiments – Nutmeg and mace”
- Food and Agricultural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 Marcelle, G. B. (1995), Production, handling and processing of nutmeg and mace and their culinary uses
- Wikipedia(한국어), “육두구”, “메이스(향신료)”, “그레나다”
- Wikipedia(영어), “Myristica fragrans”
- USDA FoodData Central 기반 영양 정보
- PlantVillage(Penn State University), “Nutmeg” datasheet
원물알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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