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고기의 주인공은 집토끼다, 별주부전부터 세계의 토끼고기 문화까지
토끼고기는 굴을 파고 사는 집토끼와 들판의 산토끼 중 어느 쪽 고기일까요? 별주부전과 동의보감의 기록부터 새마을운동 시기 사육 장려, 세계 각국의 토끼고기 문화와 영양성분까지 살펴봅니다.
토끼고기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다소 낯선 이름부터 떠오른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축산물 위생관리법에 따라 소, 돼지, 닭과 함께 엄연한 가축의 고기로 분류되며, 세계적으로는 전혀 낯설지 않은 육류다.
토끼고기는 전 세계 50개국 이상에서 소비되는 식육 가운데 하나이며,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식용과 농가 부업을 목적으로 토끼를 사육해왔다. 특히 중국과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오늘날에도 토끼고기를 식재료로 이용하고 있어 한국에서 느끼는 낯섦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런데도 정작 한국 식탁에서는 보기 힘들어진 이 고기,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풀어야 할까.
토끼고기는 사실 ‘산토끼’ 고기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식육용으로 사육하는 토끼는 산과 들에 사는 멧토끼류가 아니라 유럽굴토끼(Oryctolagus cuniculus)를 가축화한 집토끼다. 멧토끼류와 굴토끼는 모두 토끼목에 속하지만 서로 다른 과정을 거쳐 진화했으며, 생김새와 번식 방식, 생활 습성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토끼는 크게 산토끼라 불리는 멧토끼(hare), 집토끼로 알려진 굴토끼(rabbit)로 나뉘며 우리나라의 멧토끼는 주로 야산에 살고 몸길이 45~50cm에 털은 보통 회색을 띤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번식 방식과 서식 습성에 있다. 굴토끼는 굴을 파고 어미가 자신의 털을 뽑아서 깐 뒤에 새끼를 낳는데 새끼가 털이 없고 눈도 뜨지 못한 상태로 태어나 어미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지만, 산토끼는 땅 위에 터를 닦아서 새끼를 낳고 갓 태어난 새끼도 금방 눈을 뜨고 바로 뜀박질을 할 수 있다. 몸의 비례도 다르다. 멧토끼는 팔꿈치에서 팔목까지의 길이가 무릎에서 발뒤꿈치까지의 길이의 4분의 3 정도로 앉았을 때의 몸통이 앞으로 경사진다. 두 종은 유전적으로도 완전히 갈라서 있어서, 염색체 수가 집토끼(굴토끼)는 22쌍, 산토끼는 24쌍으로 달라 상호간 교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굴토끼의 가축화에는 여러 생활 습성이 영향을 미쳤다. 굴토끼는 일정한 영역과 굴을 중심으로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는 특성이 있어 사람이 제한된 공간에서 관리하고 번식시키기에 비교적 유리했다. 반면 멧토끼류는 넓은 공간에서 단독생활을 하고 빠르게 달아나는 성향이 강하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사육되는 대부분의 집토끼는 유럽굴토끼를 가축화하고 여러 용도에 맞게 개량한 계통이다.
한반도에는 원래 ‘굴토끼’가 없었다.
전통적으로 한반도에 살던 야생 토끼는 멧토끼류였으며, 오늘날 집에서 기르는 유럽굴토끼 계통의 집토끼는 외래 가축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집토끼 사육이 농가 부업으로 적극 장려되면서 한반도 여러 지역으로 널리 확산됐다. 집토끼 사육이 농가 부업으로 일반화한 건 다이쇼(大正) 시대였고, 식민지 한반도에도 이는 곧 거의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이렇게 들어온 토끼는 가죽과 털을 얻고자 하는 목적이 컸지만 고기도 빼놓을 수 없었다.

해방 이후에도 토끼 사육은 계속됐다. 1960~70년대 새마을운동 시기에 한국 정부에서는 농가 소득증대와 구휼을 위해 토끼 키우기를 권장하여 1990년대까지만 해도 각 집마다 토끼를 길러서 푸줏간에 팔아 용돈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상황은 빠르게 달라졌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농촌 인구가 급감하고, 대량 사육이 용이한 소, 돼지, 닭 같은 다른 고기들의 공급이 늘어나면서 토끼고기 취식 문화는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특히 닭고기는 맛이 토끼고기와 비슷하면서도 수율이 높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 토끼고기를 밀어냈다. 그 결과 국내 토끼 사육농가는 2001년 1만7,180호에서 2020년 2,112호로 줄었고 상업적으로 전문사육하는 농가는 100호 미만으로 추정된다.
별주부전의 간, 동의보감의 처방
토끼고기가 한국 문화에서 완전히 낯선 존재였던 것은 아니다. 토끼는 우리 옛이야기에도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인 토끼전·별주부전에서는 병든 용왕에게 토끼의 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자라가 토끼를 용궁으로 데려가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다만 이것은 풍자와 해학을 담은 우화소설의 장치이므로, 이 이야기만으로 당시 사람들이 실제 토끼 간을 귀한 보양식이나 약재로 널리 사용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조선 초 식료찬요에 토끼탕이 기록될 만큼 토끼고기 요리의 역사가 깊다. 조선시대 대표 의서인 동의보감에도 기록이 남아 있는데, 동의보감에는 토끼고기를 성질이 차고 평하며 맛이 맵고 독이 없는 약재로 갈증을 치료하고 비(脾, 비장)를 튼튼하게 한다고 실려 있다. 물론 이는 전통 의서의 기록으로, 현대 의학적으로 검증된 효능과는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굴토끼와 산토끼, 한 눈에 비교하면

두 토끼는 실제로 나란히 놓고 보면 차이가 뚜렷하다. 집토끼는 우리가 떠올리는 모양인데 반해 산토끼는 대체로 귀가 크고 몸에 비해 얼굴이 작은 편이며 다리가 집토끼보다 훨씬 길어 적을 만났을 때 재빨리 도망치기 적합하게 생겼다. 성격 차이도 뚜렷해서 집토끼는 순해 집에서 기르기도 하나 산토끼는 생물학적으로 사람을 두려워해 길들여지지 않는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식육용으로 사육·유통되는 토끼는 유럽굴토끼를 가축화하고 육용 등의 목적으로 개량한 집토끼 계통이다.
영양성분은 어떨까?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이 한국특수가축협회 의뢰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토끼고기는 고단백 식품으로 100g당 단백질 함량이 20.97g에 이르고 칼슘(14mg), 칼륨(366mg) 등 미네랄 함량도 풍부하다. 특히 비타민 구성이 눈에 띈다. 동물성 식품에만 존재하는 비타민B12가 식육 가운데 가장 높은 100g당 6.5μg 함유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비타민B12는 수용성 비타민으로 혈액 생성과 유전자 합성 등에 관여한다. 지방산 구성에서도 토끼고기 등심은 건강에 이로운 다가불포화지방산 비율이 많았으며 특히 필수지방산인 리놀렌산(2.73%) 비율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다른 육류와 비교한 연구 결과도 있다. 국립축산과학원 연구진이 시중 토끼고기와 닭고기를 비교 분석한 결과, 토끼고기(등심)의 단백질 함량은 100g당 21.7g으로 닭가슴살(23.2g)보다 약간 낮았고, 콜라겐 함량은 해당 비교 연구에서 토끼고기가 1.3g으로 닭고기 1.0g보다 높게 분석됐다. 지방산 균형 측면에서도 불포화지방의 일종인 리놀렌산 함량은 토끼고기가 닭고기의 4.6배에 달했고, 오메가-6 지방과 오메가-3 지방의 비율은 토끼고기가 12.6으로 닭고기(22.7)보다 1.7배 낮았다. 소고기·돼지고기와 비교하면 지방 함량 면에서도 차이가 드러나는데,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지방함량은 각각 20.6g, 12.84g인 데 비해 토끼고기의 지방함량은 7.68g으로 낮은 편으로 분석됐다. 다만 이러한 수치는 부위, 사육 방식, 분석 방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하나의 참고 자료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세계는 지금도 토끼고기를 즐긴다.
한국에서는 낯설어졌지만 세계 시장에서 토끼고기의 입지는 여전히 크다. 전 세계 토끼와 토끼 종류 고기 생산량은 연간 약 86만 톤 수준이며 그중 중국이 절반 이상을 생산하고, 유럽에서도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헝가리 등이 주요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나라마다 조리법도 개성이 뚜렷하다. 프랑스에선 라팽 오 무스타르가 유명하고, 스페인 발렌시아 지역의 전통 파에야는 해물 대신 토끼고기와 달팽이로 만들며, 중국 사천성에선 냉흘토가 인기다. 이탈리아에선 토끼고기를 토마토 소스에 조린 코니글리오 알라 카차토라가 흔하며 올리브와 로즈마리로 풍미를 더한다.
어떻게 손질하고 조리할까?
한국의 전통적인 토끼고기 조리법은 각종 양념과 채소를 넣고 빨갛게 끓인 토끼탕이 대표적이다. 살코기가 많고 잔뼈가 있는 구조 때문에 국물 요리로 오래 끓여 부드럽게 먹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구이로 먹을 경우에는 주의가 필요한데, 닭고기와 유사하면서 지방이 적은 육질이라 주로 탕으로 요리하고, 구이로 먹을 경우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익혀야 질기지 않다. 지방이 적은 살코기이다 보니 급하게 고온에서 조리하면 쉽게 퍽퍽해지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뼈까지 통째로 판매하는 경우가 많아 손질 부담이 있지만, 국내에서는 주로 손질된 상태로 유통되는 편이다.
결국 토끼고기는 한국인에게는 별주부전 속 옛이야기이자 새마을운동 시절 추억의 부업 가축으로 남아 있지만, 지구 반대편에서는 지금도 식탁에 자주 오르는 실용적인 단백질원이다. 굴을 파고 사는 순한 집토끼와 들판을 질주하는 야생 멧토끼가 전혀 다른 동물이라는 사실, 그리고 집토끼 사육이 일제강점기를 거쳐 농가로 확산되고, 이후 산업화와 축산업의 변화 속에서 점차 우리 식탁에서 멀어진 과정은 이 고기 한 점에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가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지방이 적고 단백질과 비타민B12가 풍부한 토끼고기의 영양적 특징은 균형 잡힌 식단의 한 축으로 활용될 수 있는 식재료라는 점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특정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만능 식품으로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세계 곳곳의 식탁에서 여전히 사랑받는 고기가 유독 우리 식탁에서만 멀어진 이유를 되짚어 보는 것, 그것이 토끼고기라는 원물이 던지는 흥미로운 질문일 것이다.
참고자료
-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토끼고기 영양성분 분석 보도자료 (정책브리핑, 2022)
- 농민신문, “농진청, 토끼고기 비타민B12·칼슘·칼륨 풍부” 보도 (2022)
-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발표, 토끼고기·닭고기 영양성분 비교 연구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 게재)
- 국립축산과학원 배인선 박사, “토끼고기의 영양적 성분 및 기능성 효과 규명” 발표자료
- 국립생물자원관·위키백과, 멧토끼(Lepus coreanus)·굴토끼(Oryctolagus cuniculus) 항목
- 서울특별시 미디어허브, “한반도에는 굴토끼(rabbit)가 없었다?” 기고
- ikpnews, “토끼 사육도 축산업인가요?” (농림축산식품부·한국특수가축협회 자문)
- hidoc 헬시라이프, “용왕도 탐낸 토끼 간의 비밀은?” (동의보감·식료찬요 관련 기록)
원물알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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