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짱 도루묵’에 얽힌 사연, 11월 알배기와 동해의 겨울 도루묵
말짱 도루묵의 주인공, 도루묵은 왜 이름부터 반전의 사연을 품게 됐을까요? 도루묵의 형태와 서식지, 11월 산란과 알배기 제철, 기후변화로 줄어드는 어획량까지 살펴봅니다.
겨울 동해안 포장마차에서 연탄불에 구워지는 생선 한 마리, 툭 터지는 알의 식감으로 기억되는 그 물고기가 도루묵이다. 그런데 이 흔한 생선의 이름에는 “애써 이룬 일이 헛수고로 돌아갔다”는 뜻의 속담 ‘말짱 도루묵’이 숨어 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생선이 왜 하필 헛수고의 상징이 되었을까. 이름의 사연부터 산란과 제철, 최근 급감하고 있는 어획량까지 도루묵을 따라가 본다.
도루묵은 어떤 물고기인가
도루묵의 학명은 Arctoscopus japonicus이며 영어로는 sailfin sandfish 또는 Japanese sandfish라 부르고, 북한에서는 도루메기라는 문화어로 불린다. 도루묵은 도루묵과에 속하는 물고기로 몸은 회색이며 옆으로 납작하다. 분류학적으로는 페르카목 도루묵과에 속하는 어류로, 도루묵속의 유일종이다. 몸의 생김새를 좀 더 자세히 보면 체고가 가장 높은 지점은 제1등지느러미 앞쪽이고, 아래턱이 앞으로 튀어나와서 입이 위쪽을 향하며 입에는 작은 이빨이 나 있다. 비늘이 없고 몸길이는 약 20cm 정도이다. 비늘이 없어 손질이 쉽고, 통째로 구웠을 때 껍질째 부드럽게 먹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도루묵은 한국 동해와 일본 북부, 캄차카, 사할린, 알래스카에 분포한다.
이름 속에 숨은 반전의 서사
도루묵이라는 이름을 둘러싼 이야기는 여러 갈래로 전해진다. 가장 널리 알려진 민간어원은 전쟁 중 피난길에 오른 임금이 ‘묵’이라는 생선을 맛있게 먹고 이름값에 걸맞지 않다며 은어(銀魚)라는 귀한 이름을 내렸다가, 훗날 궁에 돌아와 다시 먹어보니 그 맛이 아니어서 “도로 묵이라 불러라” 했다는 일화다. 다만 이 이야기 속 임금이 누구인지는 학설이 엇갈린다. 흔히 임진왜란의 선조로 알려져 있지만 이 일화에 등장하는 임금을 흔히 임진왜란을 겪은 선조나 인조로 보는 학설이 많지만,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라는 주장도 나왔다. 실제로 선조가 도루묵 주산지인 동해안 쪽으로 피신한 적이 없다는 점도 이 일화의 신빙성을 낮춘다.
문헌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면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도문대작에는 “목어(木魚)를 좋아했던 전 왕조의 임금이 은어로 이름을 바꿨다가 많이 먹고 싫증 나자 다시 고쳐 환목어(還木魚)로 불렀다”는 기록이 있어, 이야기의 뿌리가 고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견해도 있다. 언어학적으로는 도루묵의 옛 형태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6세기 간찰에 기록된 ‘돌목’이며, 이 이름이 상대적으로 조잡한 생물에 붙이는 접두어가 결합한 형태로 추정된다는 연구도 있다. 어느 쪽이 정확한 기원인지는 단정할 수 없지만, 이 때문에 현대에도 ‘말짱 도루묵’이라는 표현이 쓰이며, 숙종 때 이미 유행어로 기록될 만큼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 귀한 대접을 받다가 다시 하찮은 이름으로 돌아간 생선이라는 점에서, 도루묵은 이름 자체가 하나의 짧은 이야기인 셈이다.
수심 200~400m 모래펄에서 사는 한류성 어종
도루묵은 한류성 어종으로 동해, 일본 북서해, 러시아 오호츠크해 근처에 주로 서식하며 수심 200~400m 내의 모래펄 바닥에 산다. 평소에는 깊은 바다에 몸을 숨기고 지내는데, 문어 같은 천적을 피해 낮에는 140m~400m 깊이의 바다 속 진흙모래에 숨어 있다가 밤에 활동하는 습성을 지녔다. 흥미롭게도 국립수산과학원 독도수산연구센터가 경북 후포연안, 강원도 동해연안과 독도에 서식하는 도루묵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모두 동일한 계군에 속하는 같은 집단임이 확인되기도 했다. 동해 전역에 걸쳐 하나의 무리로 움직이는 물고기인 셈이다.

11월 밤바다, 해조류에 알을 붙이는 산란
도루묵 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역시 알이 가득 찬 배다. 한류성 어족답게 산란시기는 11월에서 12월 사이이며 늦으면 1월까지도 산란하는 경우가 있다. 산란 방식도 독특한데, 밤에 수온이 섭씨 6도~10도일 때 깊이가 2m인 모자반과 청각 같은 해조류에 약 1500여 개의 알을 낳는다. 겨울바람이 차가워질 무렵 얕은 연안 해조류 숲으로 몰려드는 것이다. 매년 11~12월 산란철을 맞아 모자반과 같은 해조류에 알을 붙여 낳으면, 이듬해 1~2월 알에서 태어난 치어들은 약 3년이면 성체가 된다.
바로 이 산란기가 도루묵의 제철로 통한다. 산란철인 11월~12월에 많이 잡혀서 이때를 제철로 치는데, 이 시기 도루묵은 몸통에 비해 알집이 굉장히 커서 이 알을 주로 먹는다. 다만 흥미롭게도 산란기의 살은 오히려 담백하고 기름기가 적어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고, 강원도 현지인들은 알을 배지 않은 산란기 전이라야 진정한 도루묵의 맛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알의 톡톡 터지는 식감을 즐기려면 산란철을, 담백하고 쫄깃한 살맛을 즐기려면 그 이전을 찾는 셈이다.
급감하는 도루묵, 산란장 변화와 자원회복의 시
한때 흔했던 도루묵은 최근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우리나라의 도루묵 어획량은 2016년 7,462톤에서 2024년 431톤으로 급감했다. 원인으로는 남획과 함께 기후변화가 꼽힌다. 국립수산과학원 연구관은 수온이 상승하면 해조류의 군락지 면적이 감소하는데, 도루묵은 그 알을 해조류에 붙이는 습성이 있어 아무래도 산란 활동이 제약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도루묵의 산란시기가 늦어지는 데다 산란처인 해조류 숲이 높은 수온으로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에 따라 국립수산과학원은 강원도 고성군 거진항·아야진항, 양양군 남애항 등 3곳에 실외 부화기를 설치해 어업인들의 협조로 도루묵알을 수거해 부화시킨 뒤, 자연 부화한 치어는 3월 말에 바다로 방류하고 있다. 어린 물고기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있다. 현재 도루묵의 포획·채취 금지체장은 11cm로 정해져 있으며, 다만 동해구외끌이저인망·동해구중형트롤 업종의 도루묵 금지체장은 총허용어획량(TAC) 준수를 조건으로 한시적으로 적용이 유예되어, 어업인들이 자율적으로 미성숙한 개체를 포획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방식으로 관리되고 있다. 그럼에도 어획량 감소세 자체가 쉽게 꺾이지 않는 것이 동해안 어민들의 고민이다.
이런 상황과 별개로 도루묵은 여전히 강원도 겨울 미식의 상징이다. 속초에서는 해마다 늦가을이면 가을철 동해안의 별미를 즐길 수 있는 속초 양미리·도루묵 축제가 열려 지역 수산물인 양미리와 도루묵의 맛을 널리 알리고 어업인의 소득 증대를 도모하고 있으며, 축제 기간에는 직거래 판매장과 먹거리 장터가 함께 운영된다.
도루묵의 영양성분과 오메가-3 지방산
도루묵은 담백한 흰살 생선으로 단백질과 몇 가지 무기질의 공급원이 될 수 있다. 어식백세 자료에 따르면 생것 도루묵 1회 제공량(60g) 기준으로 열량 67.8kcal, 탄수화물 0.3g, 단백질 9.6g, 지방 2.76g, 콜레스테롤 58.2mg, 포화지방산 0.76g 수준의 영양성분을 나타낸다. 다만 이 수치는 산지와 계절, 산란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절대적인 기준으로 보기는 어렵다. 또한 인의 함량이 많아 섭취했을 때 뼈와 치아조직의 구성성분이 되며, 물질대사를 왕성히 하여 체내 산과 알칼리의 평형을 유지하는 데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고, 라이신과 트레오닌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곡류 중심의 식단에서 이들 아미노산을 보충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도루묵의 지방에는 DHA와 EPA가 포함돼 있으며 이 두 성분은 오메가-3 지방산의 일종으로, 뇌와 혈관 건강과 관련해 흔히 언급되는 성분이다. 다만 이는 도루묵만의 특별한 효과라기보다는 등푸른 생선 전반에서 연구되는 지방산의 특징이며, 균형 잡힌 식단의 한 부분으로 곁들이는 정도로 이해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구이부터 조림, 알배기 요리까지
도루묵을 즐기는 가장 대중적인 방법은 역시 통구이다. 비늘이 없어 손질이 간단하고, 연탄불이나 석쇠에 구우면 껍질이 살짝 그을리며 알이 톡톡 터지는 식감이 살아난다. 짭조름하게 간을 한 무와 함께 끓이는 조림, 얼큰한 찌개도 겨울철 강원도 밥상에 자주 오르는 방식이다. 살이 담백해 국물 요리에 넣으면 다른 재료의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은은한 감칠맛을 더한다. 볕 좋은 날 며칠 꾸덕하게 말린 건도루묵은 쪄서 찢어 먹거나 양념에 재워 구워 먹는 방식으로, 신선한 도루묵과는 또 다른 쫄깃한 식감을 낸다.

고르고 손질하고 보관하는 법
싱싱한 도루묵은 눈이 맑고 몸통에 윤기가 돌며, 배를 눌렀을 때 탄력이 느껴지는 것이 좋다. 알배기를 고를 때는 배가 팽팽하게 부풀어 있는지 살펴보면 알이 얼마나 찼는지 가늠할 수 있다. 비늘이 없는 생선이라 흐르는 물에 겉면만 가볍게 씻어내고, 내장을 제거할 때는 배를 얕게 갈라 알을 다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손질하는 것이 요령이다. 알을 따로 요리에 쓰고 싶다면 배를 가른 뒤 알집만 분리해 소금물에 살짝 헹궈 사용하면 된다. 손질한 도루묵은 물기를 제거한 뒤 한 마리씩 랩이나 비닐에 싸서 냉동 보관하면 비린내와 산화를 줄일 수 있고, 냉장 상태로는 가능한 한 빨리 조리해 먹는 편이 맛과 신선도를 지키는 방법이다.
도루묵은 화려한 생선은 아니다. 이름부터 임금에게 버림받은 사연을 품고 있고, 한때는 흔해서 귀한 대접을 못 받던 생선이었다. 그러나 매년 11월 동해 연안의 해조류 숲에 알을 붙이며 살아가는 이 물고기의 생태를 알고 나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 속에 담긴 반전의 서사가 새삼 흥미롭게 다가온다.
기후변화로 산란장이 줄고 어획량이 급감하는 지금, 도루묵은 다시 한번 이름값을 묻고 있는 셈이다. 겨울 동해의 별미로 자리 잡은 이 작은 생선이 앞으로도 강원도 포장마차의 연탄불 위에서, 그리고 속초항의 늦가을 축제 한복판에서 계속 만날 수 있는 존재로 남기를 바라는 것은 어민들만의 바람이 아닐 것이다.
참고자료
- 국립수산과학원 – 도루묵 자원회복 전담반 및 치어 방류 관련 보도(서울신문, 이데일리 재인용)
- 국립수산과학원 독도수산연구센터 – 독도·동해 도루묵 유전자 분석 결과(이투데이 재인용)
-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 – 도루묵 어획량 감소 및 산란장 변화 관련 인터뷰(MBC뉴스투데이)
- 해양수산부 – 수산자원관리법 시행령 제6조 관련 금어기·금지체장 기준 및 도루묵 금지체장 적용유예 공고
- 위키백과 – 도루묵 항목(이름과 문화, 형태 관련 서술)
- 수협중앙회 수산정보포털(어식백세) 및 lampcook 수산물사전 – 도루묵 영양성분 및 생태 정보
- 경향신문 [여적] 도루묵 살리기, 천지일보 등 도루묵 어원 관련 보도
- 속초시·속초시수산업협동조합 – 속초 양미리·도루묵 축제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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