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는 왜 브로콜리·콜리플라워·케일과 한 가족일까? 결구의 비밀부터 비타민U까지
양배추와 브로콜리, 콜리플라워, 케일은 사실 같은 종에서 갈라진 사촌입니다. 겉잎이 둥글게 뭉쳐 결구가 되는 과정부터 비타민U의 진실, 한국의 사계절 재배까지 양배추를 깊이 들여다봅니다.
마트 채소 코너에서 가장 묵직하고 단단한 공처럼 생긴 채소를 하나 집어 들면, 그것이 바로 양배추다. 겉은 매끈하고 속은 하얗게 겹겹이 뭉쳐 있는 이 채소는 쌈채소로도, 샐러드로도, 즙으로도 먹히는 우리 식탁의 단골손님이다. 그런데 이 둥근 채소 한 포기 안에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식물학적 사연이 숨어 있다. 브로콜리도, 콜리플라워도, 케일도, 심지어 콜라비와 방울다다기양배추도 모두 양배추와 같은 식물종에서 갈라져 나온 ‘사촌’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나의 야생 식물에서 갈라진 채소들
식물분류학적으로 양배추의 학명은 브라시카 올레라케아(Brassica oleracea)이며, 놀랍게도 이 학명 하나가 우리가 전혀 다른 채소라고 생각하는 여러 작물을 모두 포함한다. 브라시카 올레라케아 종은 브로콜리, 콜리플라워, 방울다다기양배추, 흰 양배추, 적양배추, 사보이 양배추, 케일 등 적어도 열 가지 이상의 상업적 재배 변종을 포함할 만큼 매우 다양하며, 이 유형들은 표현형으로는 크게 달라 보여도 같은 종이기 때문에 유전적 장벽 없이 서로 교배가 가능하다. 콜리플라워라는 이름 자체도 이 관계를 보여주는데, 이 이름은 양배추를 뜻하는 라틴어 낱말 caulis와 꽃을 뜻하는 영어 낱말 flower를 결합한 것으로, 브라시카 올레라케아 종에는 양배추, 방울다다기, 케일, 브로콜리, 콜라드를 포함하지만 이들의 재배종군은 서로 다르다.
즉 이 채소들의 차이는 서로 다른 종이 아니라, 사람이 식물의 어느 부위를 집중적으로 키우도록 선택했는가의 차이다. 잎을 뭉치게 키우면 양배추가 되고, 꽃봉오리를 키우면 브로콜리나 콜리플라워가 되며, 잎을 그대로 펼쳐 키우면 케일이, 줄기 마디마디의 곁눈을 작은 공 모양으로 키우면 방울다다기양배추가, 줄기 밑동을 둥글게 부풀리면 콜라비가 되는 식이다. 콜라비 역시 십자화목 배추과에 속하는 저온성 2년생 채소로 양배추, 콜리플라워, 브로콜리, 케일 등과 같은 종이다. 오늘날 재배되는 양배추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야생형 Brassica oleracea는 서유럽의 대서양 연안과 지중해 주변 지역에서 오랫동안 이용되고 재배되어 왔다. 정확한 재배화의 출발점을 한 지역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2천 년 이상 재배되면서 오늘날의 양배추와 케일, 브로콜리, 콜리플라워, 콜라비 등 다양한 형태로 분화했다. 기원에 대해서는 지중해 연안 여러 지역을 함께 꼽는 견해들이 있어 한 지점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공통적으로 서늘하고 해안에 가까운 유럽 지역이 출발점으로 지목된다.
겉잎에서 둥근 결구까지, 양배추가 공처럼 뭉치는 이유
야생 양배추는 본래 지금처럼 동그랗게 뭉쳐 있지 않았다. 사람들이 오랜 세월 선택 육종을 거듭한 끝에 잎이 겹겹이 싸여 단단한 덩어리, 즉 ‘결구’를 이루는 형질을 강화한 결과가 지금의 양배추다. 발육 초기의 잎은 잎자루가 있으나 점차 짧아져서 결구엽은 잎자루가 거의 없어지며, 굵고 로젯트화한 줄기의 끝에 다수의 잎이 단단하게 결구되어 큰 엽구를 형성한다. 바깥쪽 로제트 모양으로 펼쳐지던 잎들이 생장점을 둘러싸며 안으로 말려드는 과정에서, 속잎들은 햇빛을 거의 받지 못한 채 희고 부드러운 조직으로 남는다. 바깥쪽 녹색 잎은 상대적으로 질기지만 색소와 일부 영양성분은 안쪽 잎보다 많이 포함될 수 있다.

이 결구 과정은 기온에 매우 민감하다. 재배 중 온도와 수분 관리가 맞지 않으면 조기추대(저온), 열구(가뭄), 미결구(고온) 등의 생리장해가 나타나는데, 저온 조건에서는 조기추대가 나타날 수 있고, 가뭄 뒤 갑자기 수분 공급이 많아지면 결구가 빠르게 팽창하면서 바깥 잎이 갈라지는 열구가 나타날 수 있으며, 반대로 너무 더우면 아예 결구가 완성되지 않는다. 양배추가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저온성 채소로 분류되는 이유도 바로 이 결구 생리 때문이다. 우리가 수확하는 양배추는 식물의 생애가 끝난 모습이 아니다. 양배추는 기본적으로 두해살이 성질을 가진 식물로, 첫해에는 잎을 키워 결구를 만들고 일정 기간 저온을 경험한 뒤에는 꽃대를 올려 노란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만든다. 식용 양배추는 이 생식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결구가 충분히 단단해졌을 때 수확한다. 어린 식물이 필요 이상으로 저온을 경험하면 결구가 충분히 만들어지기 전에 꽃대가 올라오는 조기추대가 나타날 수 있다.
색과 크기로 갈라진 사촌들
같은 결구 양배추 안에서도 품종에 따라 색과 질감이 달라진다. 양배추잎은 대체로 녹색이지만 자색인 것도 있다. 흔히 적채라 불리는 적양배추는 고랭지 및 제주도에서 재배되며, 잎이 안토시아닌이라는 성분을 함유하여 붉은색을 띠는 양배추의 일종으로, 같은 종이지만 색소 축적 유전자가 다르게 발현된 결과다. 잎 가장자리가 주름진 사보이 양배추, 샐러드용으로 개발된 작은 크기의 품종들도 모두 결구 양배추의 변주다. 한국에서는 일반 양배추의 3분의 1 크기인 작은 품종을 ‘꼬마양배추’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줄기 마디마다 작은 공이 여러 개 맺히는 서양의 방울다다기양배추(브뤼셀 스프라우트)와는 다른, 하나의 작은 결구만 맺는 샐러드 전용 품종이다. 이 신작목 꼬마 양배추는 일반 양배추보다 크기가 3분의 1에 불과한 500∼900g으로 소비가 편하고 잎이 부드러우면서도 수분함량이 94%로 높아 핵가족의 샐러드용 채소로 인기가 높다.

양배추는 언제 한국에 들어왔을까?
한국에서 양배추가 확인되는 이른 기록은 개항기인 18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884년 최경석이 미국에서 돌아온 뒤 설립에 참여한 농무목축시험장에서는 새로운 서양 채소와 농작물을 시험재배했는데, 당시 작성된 『농무목축시험장소존곡채종』의 작물 목록에는 양배추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 ‘가베지’를 비롯해 콜라비와 케일로 추정되는 채소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적어도 1884년 무렵에는 양배추가 국내에 들어와 시험재배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시험재배가 곧 일반적인 보급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1870년 무렵의 『명물기략』이나 1885년 『농정신편』, 1886년 『농정촬요』 등 당시 문헌에서는 양배추가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아, 19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대중적인 채소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1930~1940년대에 일본을 통해 일부 재배가 이루어졌고, 국내에서 재배량이 크게 늘어난 것은 6·25전쟁 이후 유엔군에 공급하기 위한 채소로 재배되면서부터다.
오늘날 이름인 ‘양배추’의 ‘양(洋)’은 서양에서 들어온 배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채소가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개항기 시험재배에서 시작해 전쟁 이후 재배 확대를 거치며 한국 식탁에 자리 잡은 셈이다.
한국의 사계절 양배추, 재배력을 따라가면
한국에서 양배추는 한 계절에만 나는 채소가 아니다. 지역과 고도를 옮겨가며 거의 사시사철 생산된다. 재배법은 크게 봄, 여름, 가을재배로 나눌 수 있는데 봄재배는 고랭지에 적합하고, 여름재배는 6~8월에 파종하여 11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수확하며, 가을재배는 남부지방에 적합해 9월 중순부터 10월 초에 파종하고 다음해 4~7월에 수확한다. 여름철 고온을 피해 강원도 산간 고랭지에서 자란 양배추가 올라오고, 가을이 깊어지면 남부 지방의 노지 양배추가 그 자리를 채우는 식으로 산지가 이어달리기를 하는 셈이다. 이런 릴레이 재배 덕분에 소비자는 계절 구분 없이 신선한 양배추를 구할 수 있다.
영양성분, 100g 기준으로 보면
생 양배추 100g에는 대략 25~28kcal의 열량과 함께 0.96g의 단백질, 0.23g의 지방, 6.4g의 탄수화물이 들어 있으며, 수분 비중이 매우 높아 포만감에 비해 열량 부담이 적은 채소로 꼽힌다. 비타민K가 100g당 약 76㎍(일일권장량의 63%), 비타민C가 약 37mg(41%)으로 풍부한 편이며, 엽산과 식이섬유도 함께 들어 있다. 다만 같은 양배추라도 품종, 재배 시기, 숙성도에 따라 수치는 달라질 수 있고, 특히 비타민C처럼 열에 약한 성분은 가열 조리 과정에서 상당 부분 줄어든다.
양배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성분이 이른바 ‘비타민U’다. 이 명칭은양배추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 이른바 ‘비타민U’다. 미국의 의사 가넷 체니(Garnett Cheney)는 1940~1950년대 신선한 양배추즙과 소화성 궤양의 관계를 연구했으며, 1949년에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 관찰 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양배추에 존재한다고 본 항궤양성 식이인자를 ‘비타민U’라고 불렀다. 다만 비타민U는 오늘날 비타민C나 비타민K처럼 필수 비타민으로 인정되는 공식 영양소 명칭은 아니며, S-메틸메티오닌 등과 관련해 사용되어 온 역사적 명칭에 가깝다. 1950년 미국영양학회 저널에 양배추에 풍부한 메틸 메티오닌 설포늄 클로라이드 성분이 소화성 궤양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를 발표하면서 궤양(Ulcer)의 앞 글자를 따 ‘비타민U’라는 이름이 붙었다. 다만 이름에는 비타민이 붙어 있지만 사람에게 필수적인 공식 비타민으로 분류되는 영양소는 아니다. 또한 초기 연구에서 사용한 것은 순수한 S-메틸메티오닌 하나가 아니라 비타민C, 글루코시놀레이트, 플라보노이드 등 다양한 성분이 함께 들어 있는 양배추즙이었기 때문에, 양배추의 위 건강 관련 가치는 한 성분만으로 설명하기보다 여러 식물성 성분을 함께 섭취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양배추에는 이 밖에도 글루코시놀레이트를 분해하는 효소인 미로시나아제가 들어 있는데, 이 효소는 열을 받으면 쉽게 파괴된다. 양배추 조직이 잘리거나 씹히면 세포 안에서 분리되어 있던 글루코시놀레이트와 미로시나아제가 만나 여러 분해산물이 만들어진다. 미로시나아제는 열에 민감하기 때문에 가열 정도에 따라 이러한 반응도 달라질 수 있다.
쌈에서 즙까지, 양배추를 먹는 방식
양배추는 조리 범위가 넓은 채소다. 쪄서 쌈으로 싸 먹거나 얇게 채 썰어 양배추 샐러드와 코울슬로를 만들고, 볶음 요리에 섞어 아삭한 식감을 더하기도 한다. 서양에서는 가늘게 썬 양배추를 소금에 절여 유산균 발효시킨 사우어크라우트가 대표적인 저장 가공법으로 자리 잡았으며, 국내에서도 소금절임이나 건조품 형태의 가공품이 유통된다. 속이 불편할 때 찾는 양배추즙은 생즙 형태로 짜내거나 저온에서 추출하는 방식이 함께 쓰이는데, 이는 비타민U와 비타민C처럼 열에 약한 성분을 가능한 한 보존하려는 목적과 관련이 있다.
고르고 손질하고 보관하는 법
좋은 양배추를 고를 때는 겉결구가 단단하고 겉잎이 제거되었으며 속대가 없는 것, 겉잎은 연한 녹색이며 부드럽고 윤기가 있으며 표면에 상처와 시든 부분이 없는 것을 살피고, 양손으로 눌렀을 때 쉽게 들어가는 느낌이 들거나 뿌리 부분을 잘랐을 때 속이 빈 것은 피하는 것이 요령이다. 손에 들었을 때 크기에 비해 묵직한 것이 수분과 속이 알차게 찬 것이다. 손질할 때는 겉잎 한두 장을 벗겨내고 심지 부분을 도려낸 뒤 용도에 맞게 자르면 되고, 자른 단면이 공기와 닿으면 마르거나 변색되기 쉬우므로 밀폐해 냉장 보관하는 편이 신선도를 오래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
이렇게 보면 양배추는 단순히 ‘둥글고 아삭한 채소’ 하나가 아니라, 사람이 식물의 서로 다른 부위를 골라 키워낸 품종 분화의 살아있는 기록이다. 같은 종에서 잎과 결구를 크게 발달시킨 것이 양배추와 케일이고, 꽃봉오리와 꽃차례를 발달시킨 것이 브로콜리와 콜리플라워이며, 줄기를 비대하게 만든 것이 콜라비, 곁눈을 발달시킨 것이 방울다다기양배추다. 둥글게 뭉친 결구 한 포기 안에는 지중해 연안의 야생 식물이 수천 년에 걸쳐 인간의 식탁 위에서 여러 얼굴로 갈라져 온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이다.
비타민U라는 이름 역시 그 자체로 신비로운 치료제라기보다는, 20세기 중반 한 연구자가 양배추즙의 효과를 관찰하며 붙인 역사적인 이름에 가깝다. 오늘날에는 비타민U 하나보다 양배추가 품은 비타민C, 비타민K, 식이섬유, 글루코시놀레이트 같은 여러 성분의 조합에 주목하는 쪽으로 시선이 옮겨가고 있다. 결국 양배추의 가치는 한 가지 신비한 성분이 아니라, 겹겹이 포갠 잎 구조만큼이나 여러 겹으로 쌓인 영양과 쓰임새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참고자료
- 농촌진흥청 농사로(nongsaro.go.kr) – 양배추의 특성 및 영양학적 가치, 양배추 재배 정보 및 재배일정
- 농림축산식품부 농식품 올바로 – 이달의 식재료: 양배추
- KAMIS 농산물유통정보 – 식재료 아카이브(양배추)
- 세종특별자치시 농업기술센터 – 꼬마양배추 재배기술 보도자료
- USDA 식품영양database 기반 Cabbage 영양정보(triagemethod.com, foodstruct.com 정리자료)
- 국가표준식품성분표농림축산식품부
- KAMIS
- Royal Botanic Gardens, Kew
- PubMed에 등재된 Garnett Cheney 원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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