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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무와 염주는 닮았지만 다르다, 의이인·율무차·율무묵과 가을 수확

원물알리미

염주 열매와 닮은 곡물, 율무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염주와의 차이부터 의이인이라 불리는 한방 활용, 통율무와 도정율무의 차이, 가을 수확까지 살펴봅니다.

가을이면 한의원 약장 서랍에도, 시골 장터 좌판에도, 자판기 종이컵 안에도 조용히 등장하는 곡물이 있다. 바로 율무다. 언뜻 보면 그냥 둥글둥글한 잡곡 한 알처럼 보이지만, 이 낟알은 사실 벼과 식물의 열매를 감싼 딱딱한 껍질, 즉 총포(苞) 속에 진짜 씨앗을 품고 있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단단한 껍질 때문에 오랫동안 염주를 만드는 열매와 헷갈려 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염주 열매와 닮았지만 다른 곡물

율무는 벼과 율무속에 속하는 한해살이 또는 여러해살이 작물이다. 율무는 벼과 율무속에 속하는 작물로, 자생 범위는 인도 아대륙과 히말라야 일대에서 중국 남부·동남아시아·대만·말레이반도에 이르는 아시아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는 후한시대부터 경제적 재배가 이루어졌고 일본에는 7-8세기 문헌에 율무의 기록이 있다. 한국에는 1078년(문종 32년) 송나라에서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 중기에는 많이 재배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인도에서는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어, 남부 인도에서 율무는 4000년 전부터 재배되어 오고 있으며 종자는 유적지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서기 1400년경에는 유럽의 수도원에서도 재배되었고, 150개의 종자가 매일 낭송되는 찬송가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열매가 단단하고 구멍을 뚫기 좋은 모양이어서 묵주나 염주처럼 실에 꿰어 쓰기에 알맞았기 때문이다.

염주용으로 쓰이는 율무와 식용 율무는 서로 전혀 다른 종이라기보다 같은 Coix lacryma-jobi 안에서 형태와 쓰임이 달라진 변종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염주용 계통은 총포가 매우 단단하고 광택이 나 실에 꿰어 장신구로 이용하기 좋고, 식용으로 재배되는 율무는 var. ma-yuen 계통처럼 껍질이 상대적으로 얇아 도정과 식용에 적합하다. 즉 둘은 가까운 친척 정도가 아니라 같은 종 안에서 이용 목적에 따라 달라진 갈래에 가깝다.

왜 영어 이름이 ‘Job’s tears’일까?

율무의 영어 이름은 ‘Job’s tears’, 우리말로 옮기면 ‘욥의 눈물’이다. 매끈하고 둥근 열매가 눈물방울처럼 생긴 데서 붙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단단한 총포를 가진 계통은 자연스럽게 구멍이 난 듯한 구조와 광택 때문에 오래전부터 묵주나 목걸이, 장식품의 재료로 이용됐다. 식용곡물과 장신구 재료라는 전혀 다른 쓰임이 한 식물 안에 공존하는 셈이다.

이삭 하나에 암술과 수술이 따로 피는 독특한 구조

율무의 꽃은 옥수수처럼 암수가 한 그루에 따로 피는 단성화다. 웅화수는 자화수를 뚫고 위로 나와 3cm 정도 위로 자라며 1마디에 1-3개의 소수가 달리고, 각 소수에 꽃이 2개씩 달리지만 그중 1개는 대가 없고 수술은 각 3개씩이며, 꽃은 단성화이고 풍매화이다. 율무는 같은 식물체에 암꽃과 수꽃이 따로 달리는 자웅동주 식물이며, 바람을 통해 꽃가루가 이동하는 풍매화의 특성을 가진다. 암꽃은 단단한 총포 안쪽에 자리하고 수꽃차례는 그 위로 길게 뻗어 나오는 독특한 구조를 보인다. 겉에서 열매처럼 보이는 단단한 부분은 암꽃을 둘러싸는 총포가 굳어진 구조이고, 그 안쪽에 실제 열매와 종자가 자리한다. 식용 율무는 이 단단한 외부 구조를 제거하고 안쪽의 종실을 도정해 이용한다.

가을 들판에서 길쭉한 잎 사이로 눈물방울 모양의 딱딱한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율무 식물

현재 국내에서 재배되는 품종은 사실상 한 갈래로 통합되어 있지만, 지역 농업기술원 단위에서는 저마다 특성을 가진 계통들이 관리되고 있다. 밀양 율무는 잎 색이 농녹색, 줄기는 황록색, 꽃 색은 황색이며 종실은 황색 대립종으로 종피가 얇은 박피종이고, 대청 율무는 엽색이 농녹색이고 잎이 크며 줄기는 황록색이고 꽃은 황색이며 종실은 흑갈색의 대립종으로 종피가 경피종이다. 이 밖에 풍성 율무나 상강 율무처럼 병해에 강하거나 중북부 지역 적응성이 높은 계통도 보급되어 있다.

파종부터 수확까지, 여름 내내 자라는 키 큰 곡물

율무는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거두는 작물로, 파종기에 따라 품종이 다르기 때문에 조숙종은 3월 상, 중순에, 중숙종은 3월 하순에서 4월 상순까지, 만숙종은 4월 하순에서 5월 상순에 파종한다. 키가 꽤 크게 자라는 작물이다 보니 재배 관리도 까다로운 편인데, 촘촘히 심으면 도복 위험이 커진다. 실제로 현장 재배 정보에서도 율무는 키가 큰 작물이므로 밀식할 경우 식물체가 웃자라고 연약해져 비나 바람에 쓰러질 확률이 크고, 바람이 잘 통하지 않고 햇볕 쬐임도 좋지 않아 잎마름병의 원인이 된다고 설명한다.

수확은 가을의 문턱에서 이루어진다. 성숙기 이후 5~7일경(단작 9월 하순~10월 상순, 이모작 10월 상·중순)에 수확하여 자연 건조시키며, 우천시에는 비닐하우스 내에서 수분함량 20% 이하가 되도록 건조시킨다. 낟알이 한꺼번에 여물지 않는 특성 때문에 수확은 9월 하순~10월 중순경 전체 종실의 70~80%가 익었을 때 실시하고, 수확 후 7일 정도 밭에서 건조한 후 탈곡·정선한다. 저장 방식도 형태에 따라 달라지는데, 건조한 율무는 조곡 상태로 저장하면 장기저장이 가능하나 도정하여 율무쌀 형태로 상온저장 시 지방산패 등으로 장기저장이 어렵다. 그래서 오래 두고 먹을 생각이라면 껍질을 벗기지 않은 통곡 상태로 보관하는 편이 안전하다.

겉껍질만 벗긴 통율무와 속까지 벗긴 도정율무

시중에 나온 율무는 도정 정도에 따라 성격이 꽤 달라진다. 시중의 율무는 도정 정도에 따라 통율무·현율무·율무쌀 등 여러 이름으로 유통된다. 일반적으로 바깥의 단단한 총포와 껍질을 어느 정도 제거했는지에 따라 색과 식감, 조리시간이 달라지며, 덜 도정한 제품일수록 외피와 배아 일부가 더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율무는 쌀과 마찬가지로 속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대로 도정한 현율무가 영양분이 많아 가급적 덜 도정된 현율무를 구입하면 영양 측면에서 좋다는 점이 알려져 있어, 현미와 백미의 관계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다만 씨눈과 속껍질이 남아 있는 만큼 씨눈과 속껍질이 살아있는 통율무는 영양가는 더 높지만 식감이 단단해 충분히 불리거나 오랫동안 삶아야 하므로 죽이나 차로 활용하기에 더 적합하다.

껍질째인 열매와 겉껍질만 벗긴 현율무, 속껍질까지 벗긴 흰 도정율무를 나란히 비교한 모습

구입할 때 살펴볼 기준도 명확하다. 율무는 껍질을 완전히 제거해 낱알이 튼실하며 골의 폭이 좁은 것을 고른다. 낟알 표면의 세로 골이 좁고 얕을수록 도정이 고르게 된 상태이고, 골이 깊고 넓으면 속껍질이 그대로 남아 식감이 거칠 수 있다.

율무는 보리와 같은 곡물일까?

율무는 둥근 낟알과 구수한 맛 때문에 보리와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식물학적으로는 다른 곡물이다. 율무는 Coix lacryma-jobi로 율무속에 속하고, 보리는 Hordeum vulgare로 보리속에 속한다. 영어권에서 율무를 ‘pearl barley’처럼 부르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모양 때문에 생긴 통속명일 뿐 실제 보리와 같은 식물이라는 뜻은 아니다.

율무쌀에 들어있는 성분들

율무는 곡물치고 단백질 함량이 높은 편으로 꼽힌다. 동남아시아가 원산지인 율무는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고, 열량은 도정곡 생것 기준 100g당 377kcal, 가루로 만든 율무차는 100g당 393kcal 정도다. 아미노산 구성에 대해서도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으로는 로이신, 글루탐산, 발린, 티로신 등이 많이 들어있다는 분석이 있다. 율무에는 비타민 B군과 여러 무기질이 들어 있으며, 품종과 도정 정도에 따라 영양성분 함량은 달라질 수 있다. 루테인을 비롯한 카로티노이드와 다양한 식물성 성분에 관한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특정 성분의 존재를 곧바로 질병 예방이나 치료 효과로 연결해서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최근 기능성 연구에서 주목받는 성분도 있다. 율무 속 특정 성분인 코익세놀라이드는 여러 연구를 통해 항염 및 항산화 효과에 대한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다만 율무를 식품으로 섭취했을 때 사람에게 나타나는 효과를 확인한 임상 연구는 아직 제한적이므로, 특정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 효과로 단정하기보다는 균형 잡힌 식단 안에서 단백질과 비타민 B군, 식이섬유의 공급원 중 하나로 이해하는 편이 알맞다.

한방에서는 ‘의이인’ , 전통적으로 어떻게 이용됐을까?

율무의 씨앗은 식용을 넘어 오래전부터 한방 약재로도 쓰였다. 한의학에서는 껍질을 벗긴 율무 씨앗을 의이인(薏苡仁)이라 부르는데, 벼과에 속한 일년생 또는 다년생 초본인 율무의 잘 익은 종자를 가을에 과실이 성숙하였을 때 채취하여 볕에 말린 다음 겉껍질과 황갈색 외피를 제거하여 사용한다. 전통 의학에서 다뤄 온 작용으로는 비경, 폐경, 신경에 들어가며 건비, 이습, 청열, 배농 작용이 있어 하리, 습비, 근맥구련, 수종, 각기, 폐위, 폐옹, 장옹 등의 증상에 쓰였다는 기록이 있다. 다만 이런 전통적 쓰임은 현대 의학적으로 입증된 치료 효과와는 구분해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으며, 비위가 약해 대변이 어려운 사람과 전통 문헌에서는 임신 중 의이인 사용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주의도 전해진다. 이는 한약재로 사용하는 경우의 전통적 주의사항이므로, 일반적인 식품 섭취와 약재 사용은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율무차부터 율무밥까지, 식탁 위의 쓰임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형태는 단연 율무차다. 율무차는 볶아서 가루 낸 율무로 만드는 차로, 때로 호두 같은 견과류를 섞기도 하며 뜨겁게 마시는 경우가 많고 한국에서는 자판기를 통해서도 흔히 판매된다. 구수하게 볶은 향과 걸쭉한 질감이 특징이라 커피 대신 찾는 사람도 많다. 이 밖에 통율무나 도정율무를 쌀에 섞어 짓는 율무밥, 충분히 불려 곱게 갈아 쑤는 율무죽처럼 곡물 자체의 식감을 살리는 조리법도 널리 쓰인다. 다만 곡물마다 성분 함량은 품종과 산지, 도정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같은 ‘율무차’라도 통곡을 직접 볶아 우린 것과 시판 인스턴트 분말 제품은 실제 섭취하는 성분 구성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돌아보면 율무는 한 알 한 알이 딱딱한 껍질 속에 씨앗을 품은 벼과 식물의 열매이면서, 동시에 염주라는 장신구의 재료와 뿌리를 나누고, 의이인이라는 이름으로 한방 약재장 서랍을 채우고, 자판기의 종이컵 속에서 구수한 향으로 익숙해진 다층적인 곡물이다. 동남아시아 어디쯤에서 시작해 중국과 한반도를 거쳐 수백 년을 건너온 이 작은 낟알은, 지금도 가을이면 밭에서 고개 숙인 이삭으로 여물고 겨울이면 따뜻한 한 잔의 차로 우리 곁에 돌아온다.

결국 율무를 제대로 안다는 것은 겉껍질과 속껍질, 총포와 씨앗을 구분해서 볼 줄 아는 것과 다르지 않다. 덜 도정된 통율무의 거친 식감 속에 더 많은 영양이 남아 있다는 사실, 그리고 같은 벼과 열매라도 염주와 식용 율무는 쓰임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다음번 장터에서 만나는 율무 한 봉지가 조금 다르게 보일 것이다.

참고자료

  •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식품올바로 ‘이달의 식재료 – 율무’
  • 농촌진흥청 농사로 농업기술포털, ‘율무 고(高)생산 재배 기술’
  • KAMIS 농산물유통정보, 식재료 아카이브 ‘율무'(농촌진흥청 품종 자료 인용)
  • 한약자원연구센터, 본초용어사전 ‘의이인(薏苡仁)’ 및 대한한의학회 표준한의학용어집
  • 우리문화신문, 농촌진흥청 ‘9월의 식재료·조리법’ 보도자료
  • Royal Botanic Gardens, Kew, Plants of the World Online – Coix lacryma-jobi 및 변종 분류·자생지·형태
  • PubMed, 2026, The Nutritional Composition, Functional Properties, and Food Application of Adlay – 율무의 영양·식품 활용 최신 종설
  • PubMed, 2023, Research on Coix seed as a food and medicinal resource – 율무 종자의 주요 성분과 약리 연구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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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요리에 관심이 많아 제철 재료와 재료 본연의 특성, 원산지를 찾아보다가 정보를 한곳에 정리하고자 원물닷컴을 시작했습니다. 식품 전문가가 아니라 재료를 꾸준히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공식 자료를 근거로 출처를 남기며 작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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