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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의 시작부터 쓰임까지, 원물을 이해하는 기록

밀, 왜 한국은 쌀의 나라인데 밀가루를 더 많이 먹을까?

원물알리미

한반도에서 수천 년을 재배해 온 밀이 왜 자급률 1%의 수입 곡물이 되었을까요? 밀알의 구조와 글루텐의 정체, 경질밀과 연질밀의 차이부터 우리밀의 현재까지 살펴봅니다.

밥상 위에 흰쌀밥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빵과 면이 채우는 날이 많아졌지만, 정작 그 밀이 어디서 왔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전 세계 인구가 쌀 다음으로 가장 많이 먹는 곡물이면서, 동시에 한반도에서는 가장 오래 재배되어 온 작물 중 하나이기도 한 밀. 그런데 지금 우리가 먹는 밀가루의 거의 전부는 수입산이다. 이 낙차야말로 밀이라는 원물을 이해하는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밀이란 무엇인가?

밀은 벼과 밀속에 속하는 식물과 그 낟알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법적으로도 벼과 밀속 식물 및 그 낟알로 정의된다. 전 세계 경작지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작물 가운데 하나이며, 생산된 낟알의 90% 이상을 빻아 밀가루를 만들고 빵·과자·국수, 간장, 된장의 원료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쌀이 낟알 그대로 밥이 되는 곡물이라면, 밀은 가루로 만들어져야 비로소 다양한 음식으로 변신하는 곡물이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어디서 시작되어 한반도까지 왔나?

밀의 가장 오래된 조상 중 하나로 꼽히는 일립계밀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원산지로, 처음엔 야생이었으나 차차 농경화되었고 이후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가장 주된 곡물이 되었다. 이른바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시작된 밀 재배는 이후 동서로 퍼져나가 지중해와 유럽, 중앙아시아를 거쳐 동아시아에까지 전해졌다.

한반도의 경우 삼국시대 이전부터 밀을 재배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오랫동안 밀은 흔한 곡식이 아니었다. 고려시대의 기록을 보면 「고려도경」에는 밀이 적어 화북지방에서 수입하고 밀가루 값이 매우 비싸 잔치 때 먹는다고 적혔으며, 조선시대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 밀은 쌀보다 귀한 재료로 여겨졌다. 벼농사 중심의 한반도 기후에서 밀은 그늘진 보조작물에 가까웠던 셈이다. 다만 벼와 궁합이 좋은 작물이기는 했는데, 겨울이 춥고 여름이 습한 한반도의 기후에서 벼보다 추위에 강하면서 건조하고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밀의 특성상, 건기인 가을에 파종해 초여름에 수확하는 방식으로 보리와 함께 ‘양맥’이라 불리며 주요 작물로서 재배되었다.

역설적이게도 밀 생산이 가장 많았던 시기는 일제강점기였다. 일제강점기 시기에는 밀 수확량이 적지 않았는데, 조선총독부농사시험장에 따르면 1933년 당시 우리나라의 밀 수확량은 180만여 석, 약 28만 8,000톤에 달하는 양이었다. 진짜 전환점은 한국전쟁 이후였다. 한반도에서는 밀이 매우 귀한 식재료에 속했으며, 한국전쟁 때 원조물자로 들어오면서 일반가정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값싼 원조 밀가루와 수입 밀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1982년 밀 수입이 자유화되고 1984년에는 정부의 밀 수매제도마저 폐지되었다. 이 두 조치가 겹치며 국산 밀 농가는 거의 고사 상태에 이르렀고, 1991년 농민과 소비자 주도의 ‘우리 밀 살리기 운동’이 시작되었지만 소비가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그 결과 최대생산국은 중국이며 한국의 자급률은 0.8%라는, 세계 주요 밀 소비국 가운데서도 유독 낮은 수치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삭 끝까지 황금빛으로 익어 고개를 숙인 밀밭의 수확 직전 모습

밀알 속은 어떻게 생겼나?

밀 낟알 하나를 반으로 잘라보면 크게 세 부분이 보인다. 바깥을 감싸는 거친 껍질인 밀기울, 그 안을 가득 채운 흰색 전분질 배젖, 그리고 낟알 한쪽 끝에 자리한 작은 배아다. 흰 밀가루를 만들 때는 주로 배젖 부분만 곱게 빻아내고 밀기울과 배아는 제거하는 반면, 통밀가루는 이 세 부분을 함께 갈아낸 것이어서 색이 더 짙고 식이섬유가 많다. 낟알을 잘랐을 때 단면이 투명하고 유리처럼 단단해 보이는 정도도 품종을 가르는 기준이 되는데, 알의 절단면을 보았을 때 투명하고 굳은 유리 같은 부분이 많은 밀알을 초자립이라 하며, 초자립 부분의 비율이 70~100%인 것을 굳은밀, 즉 경질밀이라 부른다.

경질밀과 연질밀, 그리고 글루텐이라는 오해

밀가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글루텐이지만, 사실 밀알 자체에는 글루텐이라는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 글루텐은 곡물 속 글루테닌과 글리아딘이 물과 만나 서로 섞이면서 새롭게 형성되는 물질이며, 그래서 밀 알곡 자체에는 글루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밀가루에 물을 넣고 반죽해야만 두 단백질이 결합해 그물망 같은 글루텐 구조가 만들어지고, 이 구조 덕분에 반죽 속 기포가 안정적으로 붙잡혀 빵이 부풀고 면이 쫄깃해진다. 호밀이나 보리에도 비슷한 단백질이 있지만 호밀·보리·귀리 등에도 글루텐이 형성되는데 그 양이 밀에 비해 현격하게 떨어지며, 보리도 5~8% 정도의 글루텐이 가능한 수준이다. 반면 쌀은 글루텐을 형성하지 않는데, 이는 글루텐을 형성하는 물질의 하나인 글루테닌이 쌀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단백질 함량에 따라 밀가루의 쓰임도 완전히 달라진다. 밀가루는 종류에 따라 글루텐 함량이 높은 굳은밀로 만들어 차진 것은 강력분으로 불리고, 글루텐 함량이 낮은 무른밀로 만들어 끈기가 적은 것은 박력분으로 불린다. 국내 기준으로 보면 단백질 함량이 5~8%이면 케이크용 밀가루, 10~11.5%이면 다목적 밀가루, 11~13%이면 빵용 밀가루, 14% 이상이면 고글루텐 밀가루로 분류된다. 식빵처럼 쫄깃하게 부풀어야 하는 빵은 강력분으로, 바삭한 쿠키나 부드러운 케이크는 박력분으로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칼국수나 수제비처럼 쫄깃하면서도 끊어지는 면은 그 중간인 중력분을 쓴다.

통밀 낟알의 단면과 흰 밀가루, 통밀가루를 나란히 비교한 모습

언제 심고 언제 거두나?

밀은 씨 뿌리는 시기에 따라 크게 봄밀과 가을밀로 나뉜다. 가을밀은 늦가을에 씨를 뿌리고 겨울을 지낸 뒤 다음 해 초여름에 수확하는 종류로 세계적으로 대다수를 차지하며, 겨울을 나므로 병충해의 피해가 적고 면적당 생산량이 많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에서 재배되는 밀도 대부분 이 가을밀 방식을 따른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밀은 보통 6월 5일에서 20일 사이에 수확하고, 10월 20일에서 11월 15일 사이에 다음 밀을 파종한다. 수확 적기를 판단하는 기준도 명확한데, 밀 수확의 알맞은 시기는 이삭이 팬 후 40일에서 45일경으로 밀 포장의 이삭이 대부분 노랗게 변하는 성숙기 후 4일에서 7일이며, 이삭의 수분은 20% 내외가 되고 손으로 비벼 봤을 때 껍질이 잘 벗겨지는 때다. 너무 일찍 베면 낟알이 덜 여물고, 너무 늦게 베면 장마와 겹쳐 이삭에서 싹이 터버리는 수발아 피해를 입기 쉬워 이 짧은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밀 농사의 관건이다. 실제로 밀 수확 적기는 품질 및 건조비용 등을 고려할 때 성숙기로부터 4~7일 이후가 가장 좋다고 알려져 있다.

영양성분과 몸에서 하는 역할

흔히 밀가루가 살찌는 음식으로 오해받지만, 밀 자체의 열량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농촌진흥청 국가표준식품성분표를 보면 밀 자체는 열량이 100g당 333kcal로 도정, 생것 기준이며 높지 않은 수준이다. 통밀로 넓혀 보면 단백질과 식이섬유가 함께 들어 있는데, 해외 자료를 기준으로 할 때 통밀가루 100g에는 탄수화물 약 72.6g, 식이섬유 약 12.2g, 단백질 약 13.7g 정도가 들어 있고 티아민과 나이아신, 마그네슘, 아연 같은 비타민·무기질도 함유되어 있다. 흰 밀가루는 배젖만 남기고 밀기울과 배아를 제거한 것이어서 통밀가루보다 식이섬유와 일부 무기질 함량이 낮아지는 대신 질감이 더 곱고 부드럽다.

글루텐에 대한 우려도 함께 짚을 필요가 있다. 밀가루가 소화가 안 되는 체질이 있는데, 이는 밀에 들어 있는 글루텐이라는 성분 때문이며 글루텐에 민감하거나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설사, 복통, 소화장애 등의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 다만 이는 글루텐 과민성이나 셀리악병이 있는 일부 사람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이고, 일반적인 식생활에서 밀과 밀가루는 탄수화물과 식물성 단백질, 식이섬유의 공급원으로 균형 잡힌 식단 안에서 이용할 수 있는 곡물이라는 점이 더 보편적인 사실이다.

어떻게 이용되고 있나?

한국에서 밀은 쌀을 보조하는 곡물로 자리 잡아왔지만, 서양에서는 쌀과 함께 세계의 2대 식량작물로 주식량이 되며, 생산된 낟알의 90% 이상이 제분되어 제면·제빵·제과·공업용으로 쓰인다. 국수, 빵, 과자뿐 아니라 간장과 된장의 원료로도 쓰이며 밀기울은 좋은 사료가 된다. 다만 이 많은 쓰임의 원료가 되는 밀은 지금 거의 다 수입산이다. 2019년 기준 밀의 식량자급률은 0.7%로 대두 26.7%, 옥수수 3.5%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으며, 식생활 변화에 따라 수입한 식용밀만 250만t에 육박하는 반면 국내 생산량은 1만t 수준에 불과하다. 빵집에서 쓰는 밀가루도 마찬가지여서, 보통 빵에 들어가는 밀가루는 미국산과 캐나다산이 주로 들어가고, 국수나 만두에 들어가는 밀가루는 미국산과 호주산이 주로 들어간다.

이런 구조적 취약성이 피부로 드러난 것이 국제 곡물 시장이 요동친 시기였다. 세계 밀 수출량의 약 25%를 차지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장기화되고 인도가 수출을 금지하자 한국은 밀 전부를 사실상 수입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 밀 가격이 국내 판매가격에 곧바로 영향을 미쳤다. 이에 정부도 뒤늦게 자급률 제고에 나섰는데, 농림축산식품부는 2020년 ‘국산 밀 전문 생산단지’ 조성사업을 시작하면서 전국에 27개소를 육성했고, 매년 단지 수를 늘려 2023년에는 74개소를 선정했다. 그 사이 국립식량과학원은 용도에 맞춘 품종 개량도 꾸준히 진행해왔다. 수확 시기가 가장 빠르고 수량이 많은 국수용 밀 ‘조중’은 수확 시기가 평균 6월 1일로, 국내에서 주로 재배되는 ‘금강’이나 ‘백중’밀보다 2~3일 빠른 조생종으로 밀과 벼의 이모작에 알맞다.

어떻게 고르고 보관할까?

가정에서 밀가루를 고를 때는 용도에 맞는 글루텐 함량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좋다. 쫄깃한 식감이 필요한 식빵이나 피자 도우라면 강력분, 부드러운 케이크나 쿠키라면 박력분, 칼국수나 부침개처럼 적당한 탄력이 필요한 음식이라면 중력분을 고르면 된다. 통밀가루는 흰 밀가루보다 산패가 빠른 편이어서 개봉 후에는 밀봉해 서늘한 곳이나 냉장·냉동고에 보관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흰 밀가루도 습기와 해충을 피해 밀폐 용기에 담아 직사광선이 없는 곳에 두는 것이 좋다. 우리밀을 구매하고 싶다면 생활협동조합이나 일부 대형마트에서 국산 통밀가루를 구할 수 있으며, 포장에 적힌 원산지 표시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결국 밀은 한반도에서 수천 년을 함께해온 작물이면서도, 근현대의 경제적 격변 속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한 독특한 이력을 지닌 곡물이다. 매일 먹는 빵 한 조각, 국수 한 그릇이 대부분 지구 반대편 밭에서 온 낟알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밀이라는 작물을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식량 안보와 농업 정책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보게 만든다. 그 사이에서 금강밀, 조경밀 같은 국산 품종과 생산단지들이 천천히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는 점은, 귀했던 곡물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긴 여정의 한 장면이라 할 만하다.

참고자료

  • 농촌진흥청 정책브리핑, “수확시기, 건조방법이 밀 ‘품질’ 좌우한다”
  •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농사로(nongsaro.go.kr) 밀 수확과 저장·작부체계 자료
  • 농촌진흥청 농사로 영상자료, “우리밀 수확 후 관리” 인터뷰(국립식량과학원 김학신 박사)
  • 농촌진흥청 웹진 Hello R&D, “밀과 보리, 더 친숙하고 더 맛있게”
  • 농촌진흥청 국가표준식품성분표 (서울시 식생활종합지원센터 인용)
  • 한국농정신문, “밀, 자급률 1%의 반란…제2의 주식을 국내산으로”
  • 한국우리밀농협, “글루텐의 바른 이해, 밀에는 글루텐이 들어있지 않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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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요리에 관심이 많아 제철 재료와 재료 본연의 특성, 원산지를 찾아보다가 정보를 한곳에 정리하고자 원물닷컴을 시작했습니다. 식품 전문가가 아니라 재료를 꾸준히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공식 자료를 근거로 출처를 남기며 작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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