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는 왜 차조와 메조로 나뉠까? 강아지풀의 후예, 오메기떡의 비밀까지
좁쌀만 하다는 말의 주인공, 조. 강아지풀에서 시작된 이 작은 곡물이 차조와 메조로 나뉘는 이유와 오메기떡에 담긴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좁쌀만 하다는 말이 있다. 작고 하찮은 것을 가리킬 때 쓰는 이 표현의 주인공이 바로 조다. 낟알 하나하나가 좁쌀 크기밖에 되지 않지만, 이 작은 곡물은 한반도에서 쌀보다 먼저 사람의 밥상을 책임졌던 오래된 주식이었다. 지금은 잡곡밥에 섞이는 조연 취급을 받지만, 한때는 오곡 중에서도 가장 널리 재배된 작물이었고 흉년마다 사람을 살린 구황작물이었다.
강아지풀을 닮은 곡물, 조의 정체
조의 학명은 Setaria italica로, 벼과 강아지풀속에 속한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조는 강아지풀속에 속하는 곡물의 일종으로, 강아지풀을 작물화한 곡식이며 학명이 다른 것을 보면 서로 같은 종은 아니다. 실제로 조의 원종은 강아지풀로 밝혀져 있으며, 조와 강아지풀은 서로 교배 가능하고 유전체 검사로도 원종이라는 것이 확인된다. 염색체 수도 서로 같아 두 식물이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보여준다. 영어 이름 역시 이삭 모양에서 비롯됐는데, 한반도 남부에서는 조를 ‘서숙’이라고 부르며, 영미권에서는 foxtail millet이라고 한다. 여우 꼬리를 닮은 복슬복슬한 이삭이 특징이다.
낟알을 빻아 껍질을 벗기면 우리가 흔히 아는 좁쌀이 된다. 조의 열매를 빻아 껍질을 제거하고 남은 낟알을 좁쌀이라고 한다. 기장과 함께 취급되는 경우가 많은데 역사적으로 기장과 함께 동아시아의 주요 식량 작물로, 기장과 조를 함께 서속이라 부른다. 크기가 작다는 특징 때문에 만들어진 표현도 있다. 조는 크기가 매우 작은데, 흔히 작고 좀스러운 사람이나 물건을 보고 ‘좁쌀’만 하다는 표현을 하는 것은 이러한 조의 특성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신석기시대부터 이어진 재배의 역사
조가 처음 작물화된 곳은 중국 북부다. 조를 처음으로 재배한 흔적은 페이리강 문화와 츠산 문화(기원전 6500년~기원전 5500년)에서 발견됐으며, 조가 주식이 된 것은 양사오 문화(기원전 5000년~기원전 3000년) 전후이다. 이후 벼가 널리 퍼지기 전까지 회수 이북 지방에서는 조는 기장과 함께 주식이었다.
한반도로 건너온 시점도 상당히 이르다. 한반도에서 조, 기장 재배는 신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1999년 부산 영도구 동삼동의 패총에서 발견된 불에 탄 조 75알과 기장 16알의 방사선 탄소연대를 측정한 결과 신석기 중기인 기원전 3360년으로 나타났고, 이는 한반도에서 농경이 신석기 중기에 시작됐고 지역적으로 한반도 전역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후로도 조는 오랫동안 주곡의 자리를 지켰다. 고구려에서는 평민들의 주식으로 사용됐고, 한반도에서 쌀이 주곡의 지위를 갖게 된 것은 6세기 이후의 일이며 그 이전까지는 조가 쌀을 제치고 한민족의 식생활에서 주된 탄수화물 공급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문헌 기록도 이를 뒷받침한다. 3세기의 괴지동이전 고구려 조(條)에 좁쌀의 기록이 있고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8년(668)에 고구려를 공격한 후의 논공행상에서 조를 준 기록이 있다.
근대에 들어서도 조의 위상은 상당했다. 조는 해방 직후인 1940년대까지 벼 다음으로 재배 면적이 많을 정도로 중요한 곡식이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1945년 이전에 한때 남북한 전체의 조 재배면적이 70만ha에 달한 적이 있고, 1960년대에는 15만ha까지 재배되다가 점차 감소하여 근년에는 2,000ha까지 급감했다. 벼농사 기술이 발달하고 관개시설이 갖춰지면서 조는 서서히 밥상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척박한 땅에서 강한 이유
조가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유는 까다롭지 않은 성질에 있다. 생육 기간이 짧고 건조에도 매우 강하므로 척박한 땅에서도 잘 되며, 흉년이 들었을 때 주식으로 할 수 있는 작물이다. 강아지풀에서 유래한 만큼 생명력도 강해서, 관개기술이 부족하고 물이 귀한 지역에서도 안정적으로 거둘 수 있는 작물이었다. 이 덕분에 화산지대라 논농사가 어려웠던 제주도에서는 조가 오랫동안 주요 작물로 자리잡았다. 화산섬인 제주는 토양이 벼농사에 적합하지 않아 예로부터 조와 메밀, 보리 등의 밭농사가 주로 이뤄졌고, 이로 인해 조와 메밀, 보리 등을 활용한 식문화가 발달했다.
조상들은 이 작물의 생태를 세밀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조는 생태형이 다양하여 봄에 심는 ‘봄조’와 하지 이후 뒷그루로 심는 ‘그루조’로 품종이 분화되어 있었으며, 심은 지 50일 만에 수확할 수 있는 ‘쉰날거리조’ 같은 이름은 늦게 심고 빨리 수확할 수 있는 특성을 조상들이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옛 그림에서 조는 알곡이 풍성하게 달리는 모습 때문에 특별한 의미로 그려지기도 했다. 옛 그림에서 조가 알곡이 많이 달리므로 “풍요”를 상징하기도 하고, 익어서 고개를 숙이므로 “겸손”을 상징하기도 한다.
차조와 메조, 무엇이 다를까
조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나오는 구분이 차조와 메조다. 둘의 차이는 낟알의 전분 구조에 있다. 조는 씨앗의 전분 특성에 따라서 차조와 메조로 나뉘는데, 차조는 찰기가 있으며 메조는 차조보다 찰기가 적고 열매가 굵다. 아밀로스와 아밀로펙틴의 함량 차이가 이런 식감의 차이를 만든다. 조의 주성분은 전분이며, 전분구조로 인해 아밀로스와 아밀로펙틴 함량의 차이가 발생하여 전통적으로 차조와 메조로 구분해왔다.
쓰임새도 다르게 발달했다. 차조는 주로 밥에 넣어 먹는 잡곡으로 많이 이용되고, 메조는 조직이 까끌까끌하여 목 넘김이 힘든 편이라 문배주, 막걸리, 가자미식해, 엿 등을 만들어 먹는다. 옛 농서에서도 두 품종을 구분해서 다뤘다. 우리나라의 고농서를 봐도 메조와 차조를 서로 헷갈리지 않고 잘 구분하는데, 이는 메조인가 차조인가에 따라 활용도가 서로 달랐음을 보여주며, 분자구조상 소화가 쉬운 메조가 주식으로 사용되었을 것이고 소화가 다소 늦은 차조는 절기음식으로 이용됐을 것이다. 색으로도 구분되는데, 차조 안에서도 노란색 품종인 황차조와 초록색 품종인 청차조가 있으며, 황차조는 겉모습만 보면 기장과 구별하기 아주 어렵다.

영양성분과 이용의 균형
조는 대부분 탄수화물로 이루어져 있지만 다른 곡물에 비해 크게 뒤처지지 않는 성분 구성을 보인다. 조의 주성분은 당질이며 단백질과 지질도 다른 화곡류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품종에 따른 차이도 있어 차조에 비하여 메조의 단백질과 지질 및 무기물의 함량이 더 높아 메조가 차조보다 영양가가 높은 편이다. 정제된 국가 기준 수치와 별개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100g당 특징을 보면, 조의 주성분은 탄수화물이지만 단백질(약 9%)과 지질(약 3~4%)도 많이 함유되어 있고 철분이 풍부하며 칼륨과 마그네슘도 풍부하고 비타민 B1, B2 등도 쌀보다 많이 함유되어 있다. 식이섬유 함량도 눈에 띄는데, 껍질을 벗기지 않은 조에는 저항성 전분, 단백질, 아미노산, 유리지방산, 식이섬유, 비타민, 항산화물질, 무기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된다. 이런 성분 구성 덕분에 조는 쌀 위주 식단에서 식이섬유와 무기질을 보완하는 잡곡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특정 질환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식품으로 확대 해석하기보다는 균형 잡힌 식단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는 것이 알맞다.
제주 오메기떡에 담긴 좁쌀의 기억
조가 여전히 뚜렷하게 살아 있는 식문화가 제주도의 오메기떡이다. 화산섬 제주는 물이 쉽게 빠지는 현무암 지대라 논농사가 어려웠고, 그 자리를 차조가 채웠다. 오메기떡은 차조 가루를 이용해 만들어지며 가운데 구멍을 내 빚어 ‘구멍떡’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반죽을 고루 익히기 위해 떡고물 가운데 구멍을 냈던 데서 유래하며 전통적인 제조법은 ‘흐린 좁쌀’이라 불리는 검은색 차조를 사용해 반나절 가량 불린 뒤 소금을 첨가해 곱게 가루를 낸다. ‘오메기’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한 설명에 따르면 오메기는 차조의 제주도 사투리로 잘못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술을 빚기 위해 만드는 둥글고 가운데 구멍이 있는 조떡을 의미하며 떡을 눌러준 모양이 오목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명도 있다. 이 떡은 본래 술을 빚기 위한 밑반죽이기도 했다. 그 소줏고리에다가 이 오메기술을 넣고 끓여 증류한 것이 고소리술이다.
이처럼 조는 밥 짓는 곡물을 넘어 술과 떡, 엿의 재료로도 폭넓게 쓰였다. 메조는 목 넘김이 거칠어 그대로 밥을 짓기보다는 발효식품이나 엿의 원료로 활용됐고, 찰기가 있는 차조는 단독으로도 밥을 지을 수 있어 쌀이 귀한 지역에서 주식으로 선호됐다. 차조는 찰기가 있기 때문에 다른 곡류 없이 이것만 가지고도 밥을 지을 수 있어, 주식으로 먹기에는 차조가 월등히 선호되었다.
고르고 보관하는 법
조는 낟알이 작아 도정 상태와 색이 고른지가 품질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좁쌀 특유의 노란빛이 선명하고 낟알 크기가 고르며, 눅눅하거나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을 고르는 것이 기본이다. 차조와 메조는 용도가 다르므로 밥에 섞어 먹을 목적이라면 찰기가 있는 차조를, 술이나 엿, 전통 발효식품을 만들 목적이라면 메조를 선택하는 것이 알맞다. 낟알이 작은 곡물일수록 산패와 벌레 피해에 취약하므로 여름철에는 소량씩 구입해 밀폐용기에 담아 서늘하고 건조한 곳이나 냉장·냉동 보관하는 것이 좋다. 오래 보관할수록 고유의 고소한 향이 옅어질 수 있어 가급적 짧은 기간 안에 소비하는 편이 풍미를 살리는 방법이다.
조는 한반도 농경의 시작을 함께한 곡물이면서, 동시에 벼농사에 밀려 가장 조용히 밥상 뒤편으로 물러난 곡물이기도 하다. 강아지풀이라는 흔한 들풀에서 시작해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주식이 되었고, 물이 귀한 땅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오메기떡과 오메기술이라는 형태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좁쌀만 하다는 말 속에 담긴 하찮음의 이미지와 달리, 조는 오랜 세월 척박한 땅에서 사람을 먹여 살린 끈질긴 곡물이었다는 사실이 이 작은 낟알의 진짜 이야기다.
참고자료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농촌진흥청 보도자료) – 메조와 차조 구분 관련
- KAMIS 농산물유통정보 식재료 아카이브 – 조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디지털문화대전, ncms.nculture.org) – 오랜 재배 역사를 자랑하는 조 / 오메기떡
- 서울신문 –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32>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곡물 조·기장
- 위키백과 – 조 (식물)
- 제주일보 – 차조의 고소한 맛과 콩가루, 팥고물의 달콤한 조화
- 흙살림 유기농업기술 – 종자 이야기, 그 많던 메조는 어디로 갔나
- NCBI PMC(국제 학술논문) – Foxtail millet 관련 유전학·품질 연구
원물닷컴 에디터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